활동가 성장과 연대[활동가 연구학교] 활동가 전찬혁의 후기

품 청소년문화공동체
2022-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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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과 성장, 그리고 인연의 삼위일체, '품'에 안겨 '숨'쉬는 활동가 연구학교



 


#1. 프롤로그

 

  내 나이 어느 덧 불혹, 인생의 전환점에서 나는 이직이라는 작지 않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다. 7년간 일했던 정들었던, 그리고 익숙했던 직장을 떠나 창동청소년문화의집에 새 둥지를 틀게 되었고, 예전부터 늘 해왔던, 으레 '나의 일'이라 칭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청소년 사업'을 잠시 손에서 놓고 '회계'라는 전혀 가보지 않은 미답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40여년의 삶의 시간 속에서 나에게는 어느 정도의 사회 경험도 쌓여 있었고, 그 수 많은 경험 속에서 크고 작은 풍파를 겪으면서 자연스레 파도도 타고 너울도 넘는 법을 배웠지만, 줄곧 한 곳만 바라보며 유지해왔던 나의 항로를 수정하는 것은 나에게도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새로운 방향을 찾으려 몸부림치며 떨리는 나침반의 바늘처럼 다소 위태로울 수 있는 순간들을 살아내고 있던 나에게 마치 성 엘모의 불처럼 기적같이 찾아온 '활동가 연구학교'는 좌초될 수도 있었던 나의 뱃머리를 다시금 다잡아주며 내가 바라봐야 할 방향도, 바라보는 방법도, 그리고 앞으로의 각오까지 고민하고 정리하고 다질 수 있는 북극성과 같은 존재로서 내 가슴 속에 남게 되었다.

 



#2. 막연함이 기대가 되다


  숨과 나, 우리가 처음 만나게 된 날은, 여느 때처럼 바다 한 가운데에서 새로운 항로를 찾아 헤매던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관장님께서 무심한듯 전달해주신 카톡 메시지에는 활동가 연구학교에 대한 내용이 담긴 카드 뉴스 형태의 안내문이 담겨있었다. 사실 처음 그 안내문을 접했을 때 여러 장의 안내문의 내용 모두가 눈에 들어왔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연구'라는 두 글자가 나의 뇌리 속에 벼락처럼 꽂혔던 것으로 그 순간을 기억한다.


  '연구'라는 단어는 내게는 특별하기도, 그리고 다소 멀게 느껴지기도 하는 양가감정의 단어였다. 교육학도로서 학부 생활의 마침표를 찍어내던 4학년 시절 연구방법론 수업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 '연구'라는 단어, 그리고 그 수업의 영상 분석 과제를 통해 교수님이 'Big step'을 떼었다며 극찬해주셨던 기억, 그 이 후 이어졌던 교수님의 특별 지도와 입시제도 개선에 관한 논문 작성의 첫 경험은 어쭙잖던 시절의 '연구'와의 강렬했던 첫 만남의 기억이었다.



  그 기억이 자양분이 되어 완숙한 형태는 아니었지만, 현장에서의 경험과 소통의 결과물들을 분석하고, 유형화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소홀히하지 않았고, 번듯한 연구결과물까지는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나름의 정리의 결과를 문서화하고,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고, 소통하는 형태로서의 현장 연구자의 태도를 견지하고자 늘 노력해왔었다.


  하지만 늘 나의 부족함은 막연함을 낳았고, 그 막연함은 내게서 확신과 자신감을 앗아가곤 했다. 그 결핍이 무언지 알아내고 채워가고 보완하는 과정이 내게는 절실했다. 그 때 관장님께서 권유해주신 활동가 연구학교는 나의 그러한 과제들을 말끔히 해결해줄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될 것이라 기대하기에 충분했고, 그 기대감은 모처럼 나의 가슴을 설렘으로 힘껏 뛰게 만들었다.



 

#3. 생각과 말과 행동의 놀이터, 활동가 연구학교

 

  서론이 너무 길었다. 하지만 나와 '연구'라는 녀석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부득이한 분량의 할애였다. 아, 일단 사족은 접어두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연구학교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활동가 연구학교는 말 그대로 '품'에 안겨 마음껏 '숨'쉴 수 있는 곳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화요일 오후 4시부터는 현장에서의 복잡하고 다사다난한 실무에서 잠시 벗어나 평소의 나의 고민과 결핍을 마음껏 드러내고 채우고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생각과 말과 행동의 놀이터'였다. 학장님을 비롯한 강연자 선생님들께서는 나의 결핍이었던 '연구'라는 녀석에 대한 체계적인 시각과 관점, 방법들을 채워주셨고, 그 채움을 함께하는 동문들과 나누며 그간 쌓였던 고민들을 소통을 통해 해소할 수 있는 '놀이터'이자 '안식처'로서 내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고마운 존재가 되어주었다.


  그 덕분에 평소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자기주도성'에 관한 연구 로드맵을 수립할 수 있었고, 불필요한 것들, 그리고 나의 욕심들을 걷어내고 정말로 내가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정리하고 싶은 것이 어떠한 것인지, 결국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최종적으로 정리해낼 수 있었다. 결국 내게 필요한 것은 나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도출해낸 내 고유의 '정의'와 '철학'이었다.


  활동가 연구학교의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나의 막연함은 점차 희석되어갔고, 무엇인지조차 특정되지 않았던 결핍들은 조금씩 채워져 갔다.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과정을 함께할 수 있었던 학장님과 센터장님, 그리고 준비해주시고 진행해주신 선생님들과 우리 동문들과의 인연은 화룡점정이 되었다.


 


#4. 길이 복잡할 땐, 길이 필요 없는 하늘을 바라보라.

 

  최근 인상 깊게 보았던 '안나라수마나라'라는 드라마에서 내 심금을 울렸던 명대사이다. 내가, 그리고 우리들이 현장에서의 활동가로서 진성 연구자들만큼의 체계적 연구를 수행해내기는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이 연구자들의 길과 그 결이 다소 다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 '연구'라는 길이 '현장 활동가'인 우리들에게 복잡하고 어렵게만 느껴져 멀어지거나 내려놓고 싶을 때 그러한 틀에서 벗어나 굳이 길이 없어도 마음껏 날 수 있는 하늘을 바라보는 시도들을 반복해서 해낸다면 자유로운 사고와 다양한 시도 속에서의 또 다른 연구 형태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고, 갇혀있는 상태에서는 좀처럼 알아내기 힘든 것들을 누구보다도 먼저 깨닫고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제인 구달을 비롯한 선배 현장 연구자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활동가 연구학교는 그러한 '연구의 틀'이 있음을 알려주었지만, 그 틀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굳이 그러한 틀에 갇히지 않아도 된다며 우리 '현장 활동가'들의 사고와 시도와 현장에서의 강점을 존중해 주었고 지지해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나의 일과 경험들, 그리고 앞으로 내가 하게 될 다양한 시도와 함께 종내에는 내가 꾸게 될 꿈까지도 마음껏 꿀 수 있으리라는 것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아마도 나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이렇게 회상할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9번의 만남이었다고. 

그리고 그 만남 속에서 얻을 수 있었던 배움과 성장, 인연이 삼위일체가 되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터닝포인트가 되었다고.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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