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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6월 22일 품이 태어난 날부터 지금까지 20대, 30대, 40대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10대 시절 잘 나가던 Rock Band 멤버였다.
하지만 공부안하는 '날라리 & 딴따라'라는 사회적 지탄과 멸시의 아픔들이 지금의 품을 만드는 에너지가 되었다.
한 때 꿈이었던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에너지는 아직도 남아있고 가끔은 10대들과 무대에 서기도 한다.
태생적이고 본능적인 오감 덕에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ㅇ나
우리 사회에서 요구되며 진행되고 있는 '문제의 유지와 보완'이라는 제한적 사회복지를 거부하며
품 안에서 대안적 청년문화복지를 위한 혁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마흔살이 넘은 지금도 또래의 어른들을 만나는 일보다 10대, 20대의 청년들과의 소통이 더 편안한 것을 보면
아직도 철없는 인간으로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전혀 차분하지 않은 성질로 많은 이를 괴롭혔지만 히말라야를 만나 이후에 본질적인 삶의 원형(Archetype)에 대한
고민과 실천들을 시도하며 차츰 차분해지고 있다.
이 시대의 '청년과 지역사회'가 빼앗겨버린 봄꽃을 피울 수 있다는 확신으로
한국과 네팔을 넘나들며 '청년흔들기, 청년 인문학교, 청년 커뮤니티 만들기'에 힘을 쏟고 있다.
일흔이 넘는 시간까지 살 수 있다면 히말라야 언덕에 소박한 '품속학교'를 짓고 웃기는 '교장질'을 하는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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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우연은 없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품과의 만남을 '필연'이라고 말하고 싶다.
학교를 통해서만 세상을 만나던 것이 전부였던 그 당시 1992년 중3때 만난 품은 말 그대로 '다른'세상이었다.
그 어린 마음에도 즐거운 에너지가 넘치던 선생님들이 좋아 줄기차게 품을 오가며 자연스레 품에서의 '나'를 상상했다.
그로부터 몇년 후, 2002년부터 품의 역사가 만는 순환적 구조의 산 증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멋모른 막내에서 팀장이라는 역할을 맡고 있는 시간을 통해...
2006년부터 현재까지 담당하고 있는 네팔사업을 통해...
삶의 즐거움을 재발견하며 품에서 삶의 진화를 경험하고 있다.
어쩌면 이 시대의 죽은 청년으로 살았을지 모를 내가 품에서의 삶이 행복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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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아직 콧물 흘리고 있던 어린시절.
학교와 집 외에는 몰랐던 섭에게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해주었던 품!
동아리, 기획단, 캠프 등 수많은 품의 활동으로 십대시절을 보낸 나는, 내가 품에게 받았던 에너지를
함께 살아가는 동생들과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어, 2007년 품 인턴을 시작으로 품에서 살아가고 있다.
현재 십대들과 일상의 문화활동을 만들어가고, 십대와 동네 사람들의 행복한 소통을 만들어가는
십대와 마을팀에서 육중한 몸을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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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커지기 시작한 중학교 시절부터, 남다른 '싸가지'의 소유자였다.
'학생답게' 머리를 똑같이 자르라는 선생님들이 이해되지 않았고,
내가 하기 싫은 것은 죽어라 안했으면서도, 하고 싶은 것은 또 언제나 넘쳐났다.
그러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대안학교, 산청간기학교를 만났고 총 천연색으로 가득한 삶의 이야기들을 선물받았다.
웃고, 울고, 싸우고, 놀면서 멋모르고 날뛰다 정신차려보니 사람, 삶, 세상과 만나려 말을 걸고 마주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공부가 하고 싶었고, 대학에서 심리학과 사회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2년동안 부천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사람과 일상과 관계의 힘에 흠뻑 놀라워하고 있던 스물 셋.
부천으로 강의오신 심쌤을 만나, 품을 만났다. 이후 몇 번 품을 들락거리며
잘 보이려 치장하지 않고, 진심으로 사람을 만나는 품이 참 반갑다, 생각했다.
아픈 가랭이를 부여잡고 여섯번째 오~히말라야에 참가해 네팔도 만나며 2011년 3월부터 지금 품에서 살고 있다.
먼가 불만있어 보이는 표정과 싸가지는 여전하지만,
함께 사는 삶을 조금씩 배워가며, 더 나은 세상을 함께 꿈꿀 수 있는 것에 감사해 하며
사람과 세상이 빚어내는 '삶'의 소중함을 하나씩 만나고 찾아가고 있다.
손으로 벌레를 잡을 땐 '가랭이용사'라 불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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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의 휴학후 복학했지만 무기력한 삶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중,
모교인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에서 마지막 학기에 처음으로 개설된 <글로벌복지>라는 과목을 수강.
그 수업과정에서 한 나라를 선택해 팀별로 집중 공부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네팔을 선택하게 되었고
네팔팀의 멘토로 품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네팔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그곳에 가고 싶다'는 열망으로 허우적대던 어느 날,
다섯번째 오~히말라야의 기회를 움켜잡아 네팔로 날아가게 되었다.
네팔에서 2주 조금 넘는 시간동안 그간에 나에 대한 반성과 함께 '나는 누구인가?',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공부는 무엇인가' 등을 고민하던 중 심샘께서 품에서 인턴생활을 해보지 않겠냐는 심장떨리는 제안을 하셨고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품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런게 시작된 인연은 2010년 한 해 동안 지역문화운동팀의 교육인턴, 네팔 베시마을에서 1년을 보내며
많은 것을 경험하고, 공부하고, 배워나가면서 진정 나다운 나, 안하나다운 안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이명화와 품의 인연은 참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첫 시작은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을 다니던 중 심쌤의 강의를 듣고 심장의 떨림을 들었다고 한다.
그 후 품의 실습, 인턴과정, 청년학교 등 수많은 과정을 겪으며
자신이 가진 가능성과 긍정의 에너지들을 조금씩 발견해 나갔다. 꽤 오랜 시간의 인연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재는 네팔 베시마을에서 이하니의 뒤를 이어 마을 청년으로, 마을의 일꾼을 살아가며
삶의 성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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