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1-05 21:57
1201-10_별스러움을 만드는 작별, 그건 사랑이었다.
 글쓴이 : 정이가령
조회 : 1,361  
12.2
12.2
딸의 결혼을 몰랐던 아빠, 부모에게 결혼을 알리지 않은 딸,
갑작스런 소식에 마을이 들썩인다. 사랑의 비례로 결혼은 완성되는가.
이곳 삶에, 결혼은 나의 체감과 분명 다르다.
이 곳에서의 마무리를 상상한다.
우리가 떠나는 날 쯤에는 버스가 올라온다니, 아침 7시 반 차를 타고
짐을 싣고, 고장난 가스렌지도 싣고, 내려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누군가는 그 아침 손을 흔들어주고, 잘 가라 카타를 걸어준다면
우리 중 누군가는 분명 울기도 하겠다.
한달의 시간, 엑 머이나. 처음엔 어려웠던 것들이 쉬워졌다.
나무에 불붙이기, 세 끼 밥 지어먹기, 엉성한 빗자루로 청소하기, 언 손으로 빨래 짜기,
하루하루 제일 먼저 인사를 나누고, 제일 늦게 저녁 인사를 나누고,
그런 몽창 별 일이었던 일들이, 이젠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었고
멀게만 느껴졌던 마을 길이 쉬엄 쉬엄 돌아다닐 수 있는 길이 되었고,
이름이 뭐냐, 몇살이냐 수없이 묻고 답했던 기본 신상 질문도 이젠 다른 수다와 다른 이야기로 대신한다.
낯선 것들이 익숙해질 때, 이렇게 살면 되겠다, 이런 거였구나,
나의 언어와 배움이 조금 평평해질 때 만드는 작별이다.
작별의 의미가 '만들 작'에, '별스러울 별'이라면
서로의 별스러움을 만들어준 한 달간의 작,별이다.

하미썽꺼 빤쯔업따 데레이 치토 아웅 더이츄.




12.3
2년전  11월 24일 그날의 영상을 정말 우연히 봤다. 백세밴드 공연. 그 영상안의 나는 삶은 여행을 불렀고, 절룩거리네를 띵땅거렸고
심샘은 그것만에 내 세상을 부르며 울었다. 영상 속에서 2년전 임지오도 보고, 상게다이도 보고, 현샘의 웃음소리도 듣고
산나물의 '잘한다' 소리도 들었다. 지내온 시간들이 다시 들렸다. 그 공연도 분명 추락이며 바쁜 것들, 정신없는 틈으로
만든 공연이었고, 사실 다른 분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공연이기도 했다. 뭐 그런.
다시 들은 그 시간안의 나는 분명 즐거워보였다.
금새 익숙해진 멜람치를 언젠가 다시 들어볼 시간으로 상상해보았다. 아지 라무와 두르가, 빠담 썰의 아내, 아들, 초띤, 아지 깐치,
결국 그 시간의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람이고, 또 그 살마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가 섞여 그 시간은 삶 어딘가
세상 어딘가에 점으로 찍히는 구나.
한달 동안 그새 큰 초틴도 내 이마에 점을 찍는다.
나도 모르게 찍혀있는 내 마음의 점, 내 눈앞의 점, 누가 찍었는지 모르는 점에 놀라기도 빤히 쳐다보기도 한다.
점 안에 들어가 있어 점이 찍힌 줄 모르기도 한다. 사람은 3살 이후 최소한의 자아가 생기고 나서야 거울안의 내가
점이 찍혔음을 인지한다고 한다. 거울 속의 나에게 점 찍기. 내 앞에 있는 내 옆에 있는 너에게 점 찍기.
점 찍어주기. 점점점점.




12. 4일. 마을 첫 결혼 식.

12.4
손에 손을 나누어 음식을 나누고 바리바리 싸온 카타를 목에 건다.
손님이 도착할 때마다 음식을 내오고 밥은 카자 카나 찌아 잠둘 찌우라 카자 카나.. 누구에게나 풍성하다.
마을의 사람들이 나누어 초대장을 돌리고, 하루 전 결혼식 문을 만들고 음식을 준비한다.
마을 이웃의 결혼식을 역할을 분담해 준비하기 보단,
곧 모두의 결혼을 모두가 즐기는 풍경일 뿐이었다.

모두가 즐기기보단 보여주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 너무 말도 안되기 높아진 한국의 결혼식.
그 결혼식이 부담스러워 가지 않은 결혼식이 여러개였다.
마음보다 겉치레가 먼저 인듯한 그 모습이 불편했다면,
축의금의 액수를 아주 큰 소리로 이름까지 아주 목청껏 불러 제끼는
이 곳 결혼식의 모습이 불편하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어디에 있느냐, 누구와 있느냐, 어떻게 있느냐에 따라 삶의 풍경이 이렇게도
달라짐을 확인한다.
렌전 썰, 머머따와 써뻐이 포토를 찍으며 지금 이 풍경이 그립겠구나,
네팔이 아닌 멜람치가 그립겠구나, 이 시간과 사람이 그립겠구나, 처음으로 그랬다.
무언가 그리움이 남겠다, 예상되는 그리움은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네팔을 다시 와야겠구나, 처음으로 그랬다.
뻐일료 머일레 페리 네팔 아우누 먼 라교.



12. 8 따시델레 파티 날

부엌이 꽉 찼다. 발냄새도 꽉 찼고, 온기도 꽉 찼다.
이비와 매매가 하는 이야기는 알아듣지 못해도 왠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이야기였다.
한 달 내내 그랬다.
곰돌이를 좋아한다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시며 곰돌이를 주실 때도, 때때마다 집에 들르셔서 이것 저것 걱정하시는 이야기도
그냥 다 알아듣는 것만 같았다. 이비 실리는 왜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이이' 거리냐고 하셨지만, 그때도 난 분명 왠지 다 알 것만 같았다.
알 것만 같은 마음들.
이 곳에서 산 사람들과 나눈 마음들은 그런 '알 것만 같은 마음'들 이었다.
대학교 심리학 개론 시간. 교수님이 '심리학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오류를 지닌 카피가 있어요, 뭔지 알겠나요'. 물었다.
물론 아무도 몰랐고, 교수님은 알아서 알려주셨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것은 말도 안되죠. 라며
나름 열변을 토하던 교수님.
그 때는 '뭐 그런가' 하면서도 나름 동의하는 구석이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구나, 자기 합리화이구나,
물론 그러는 한편,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억만가지 것들의 정체는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어찌 아는가, 했었다.

이비와 매매가 커레올라 씨를 주셨다.
매매네 집에 갔을 때 였나, 우리 부모님이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한국에는 커레올라가 없으니 가져가 심으면 자라려나? 하고
머머따랑 나눈 이야기를 기억하시고 씨를 챙겨 와 주셨다.
나는 정말 기억에 담지도, 마음에 담지도 않았던 그 말을 기억한 이비와 매매.
이비와 매매의 이야기를 알 것만 같은 마음으로, 그 들의 마음으로 비추어 보니 그런 마음이 닿아왔다.
'아 저 코리아 버히니에게 이걸 챙겨줘야지' 라고 따로 기억하지 않아도, 따로 말하지 않아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고 언제든 곁을 내어줄 수 있는 마음.
나눌 수 있는 것,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나누며 노나 먹고 살아온 삶의 태도가 쌓은 마음.
그래서 별 대수없이 마음가는 대로 하는 것.
그래서 '아 정말 감사하다' 하며 마음이 지리다가도, 그 감사함 역시 억지로운 감사함이 아닌,
마음에서 왠지 더 자연스럽게 우려지는 그런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이 쌓이고 쌓인 한 달.
그 켜켜이 쌓은 마음들이 느껴지는 오늘의 꽉찬 부엌. 하루하루 마을을 쏘다니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더듬 입을 뗴고, 불편한 마음을 던져보고, 덜컹이는 무거움을 내려놓으며
그렇게 산 한 달. 자연스러운 부지런함이 쌓은 한 달은, 그냥 그렇게 자연스러운 꽉 찬 부엌의 시간을 만들었다.
자주 만나지 못했어도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한 마음, 춥게 살진 않았는지 걱정스러운 마음,
벌써 한달이 지났나, 신기한 마음으로 찾아온 사람들은 '써뻐이 액떰 라므로(모두 아주 좋아용)' 라는 참 명쾌한 한 줄로 소감을 답한다.
무엇이 액떰 라므로냐, 물으면 써뻐이가 라므로 라는, 빗자르(생각)가 라므로라는 대답들.
꽉 찬 시간을 사진으로 만나고, 꽉 찬 시간을 부엌에 모인 사람들로 만나고, 우리가 산 이야기를 바라봐 주는 눈빛으로 만나니,
참 잘 살았구나 싶다.
뭐가 잘 살건지는 아직 모르고 싶지만
스스로에게 서로에게 잘 살아보자 다지며 산 시간이구나 싶었다.
하루가 남았고, 하룻밤이 남았다.
이 하룻밤을 지난 한 달 동안 참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고마운 따뜻함으로 덥혀 준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며 보내야겠다.
감사함을 전하기 위한 편지가 아닌, 실은 내가 그 마음을 더 들이고 싶어서 기억하고 싶어서 쓰는
나를 위한 편지다.




12.9. 친구들과 모닥불피워놓고 마지막 밤.
삶은 여행이다 여행은 삶이다. 사람은 삶이다. 삶은 사람이다. 여행은 사람이다. 사람은 여행이다.
사람은 많다. 삶도 많다. 많은 사람이 많은 삶을 여행한다. 사람이 사람을 여행한다.
별똥별이 별을 만났다. 궤도를 이탈해 타다 죽어 떨어진다는 별똥별.
이 곳 마지막 밤  별똥별은 다른 별을 만나러 갔다.
사람이 별을 만났다. 다른 별을 만났다. 




12.10. 멜람치 떠나던 날.
멜람치를 떠나며, 사랑이 별건가 생각했다. 건방지지만 그랬다.
찬란한 언어로 뒤덮여진, 사랑해라는 말이 어디서든 남발하여 누가 사랑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는,
사랑인지 아닌지 아니 사랑이라는 것을 규정할 수 있는지 싶어, 그 어떤 것도 사랑인가 싶을 때가 있었다.
멜람치를 떠나며 나에게 보인 것은 사랑이었다. 매매와의 사랑, 이비와의 사랑, 친구들과의 사랑,
나와의 사랑, 우리를 울먹이게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기도 전에 그냥 느껴지는 어떤 사랑이었다.
사랑을 주려 애쓰지도 받으려 꾸미지도 않았는데,
살고 나니 남는 것이 사랑, 그것이 사랑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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