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1-05 21:38
1105-1125_멜람치 10일,카트만두7일,다시 멜람치
 글쓴이 : 정이가령
조회 : 1,600  
11월 5일 우리끼리 남은날. 참치전, 볶음밥 먹음ㅋ 마을 첫 마실.

하루는 길고, 하루는 짧다.
하루는 춥고 하루는 따뜻하다.
하루는 가볍고 하루는 무겁다
가웅 가웅 자웅 자웅
굽네 굽네 치킨 치킨
익숙한 것, 낯선 것.
다르게 보기 뒤틀어보기
자연의 리듬 더듬어가기.



11.6 매매와 함께 나무 한날.

쥐가 죽었다. 쥐를 죽였다. 쥐는 무섭다. 나도 무섭다.
나무를 잘랐다. 나무를 태웠다. 공기가 뜨겁다. 연기가 차오른다.
하늘로 간다. 나무가 하늘로 간다.
물이 흐른다. 물을 채운다. 물을 막는다. 물을 나눈다.
손 떼를 묻힌다. 내 손에 묻힌다. 니 손에 묻힌다. 때가 남는다.
혼자서는 묻힐 수 없는 때를 묻히고
또 혼자서는 밀 수 없는 때를 민다.
자연에 낙서를 하는 시간, 리듬의 박동이 약해져간다.


*이때 한문장 시에 빠졌었음ㅋㅋㅋ

11.7 하루종일 마을 마실 첫 인사. 학교 드라마 데이.

눈찌아는 짠 맛이 난다.
눈찌아는 느끼한 맛도 난다.
눈찌아는 몸을 따뜻하게 해주기도 한다.
눈찌아는 아주 작아 정성어린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눈찌아는 얼마나 더 버터를 넣고 얼마나 더 소금을 넣느냐에 따라 맛의 기쁨이 달라진다.
서로 골고루 섞이고 또 그것이 마음에 담긴 찾잔에 따라져 맛이 난다.
실은 눈찌아 보다는 같이 먹는 그 시간이
맛이 있어서 또 마신다.
시간을 맛있게 만드는 건 실은 맛있는 요리가 아닌 따뜻한 온기다.



11,10  배움잇기 한주나눔.

경험이라는 것은,
내 몸에 상처가 나고
내 마음이 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배움이라는 것은,
나를 향한 그리고 세상을 향한 질문을 갖고
나와 세상의 관계를 터득해 가는 것.
노동이라는 것은,
내 몸을 움직여 필요한 것을 얻고 또 나눌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
마음이라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과 바람직 한 것의 차이로
어려워지고 마는 것.
그래서 또 내가 바라는 것과 바랄 수 있는 것이 같아지면
편해지고 마는 것.
자연이라는 것은
이 지구에 사는 인간이 가장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법칙을 연구하는 가장 큰 스승.
좋은 스승은
자기 할말은 아끼고 스스로 알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두는 것.

별로 가득 찬 밤하늘에도 내가 들어갈
자리가 있어보여 마냥 올려다 보고 싶은 밤.



11.11. 매매네서 저녁 대접받은 날. 곰돌이 대여 선물 받은 날ㅋ
찌아를 마신다. 또 찌아를 마신다. 찌아를 마신다. 또 찌아를 마신다.
내어주는 마음들로 내 마음의 공간을 넓힌다.
여행자도 아닌, 학생도 아닌 그렇다고 가르치는 과목이 있는 티쳐도 아닌,
또 그렇다고 보호자도 아닌,
좀 애매한. 그래서
여행자 일수도, 선생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그런 규정하지 않아도 되는
가능성들이 인정되는 시간.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 차마 말하지 못하는 말들 그래도 행간으로 읽혀지는 마음들.
쌓인 시간의 무게가 때껴 있는 아담한 집.
어제는 나무하기 선생님.
오늘은 그저 손녀의 재롱을 보고 있는 주름진 할아버지.
손님의 그릇이 비워질세라 손이 바쁜 엄마. 엄마에게 조잘조잘 떠드는 아이들.
햇빛과 땅, 신과 자연, 마음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의 풍경.
오늘도 한 숨을 닦았다.



11.11. 매매네서 저녁 먹은 날.
찌아를 마신다. 또 찌아를 마신다. 찌아를 마신다. 또 찌아를 마신다.
내어주는 마음들로 내 마음의 공간을 넓힌다.
여행자도 아닌, 학생도 아닌 그렇다고 가르치는 과목이 있는 티쳐도 아닌,
또 그렇다고 보호자도 아닌,
좀 애매한. 그래서
여행자 일수도, 선생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그런 규정하지 않아도 되는
가능성들이 인정되는 시간.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 차마 말하지 못하는 말들 그래도 행간으로 읽혀지는 마음들.
쌓인 시간의 무게가 때껴 있는 아담한 집.
어제는 나무하기 선생님.
오늘은 그저 손녀의 재롱을 보고 있는 주름진 할아버지.
손님의 그릇이 비워질세라 손이 바쁜 엄마. 엄마에게 조잘조잘 떠드는 아이들.
햇빛과 땅, 신과 자연, 마음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의 풍경.
오늘도 한 숨을 닦았다.




11.14. 푸르나 선생님과 이비 할머니 만나고 만남 정리 함.

데레이 퍼력쳐. 네팔어로 아주 다르다는 뜻이라고 한다.
다르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다른 것. 무엇과 무엇이 다르고 또 무엇과 무엇이 같은가.
다른 것은 또 누구의 기준이며 같은 것은 또 어떤 시각의 입장인가.
숫자 2와 1+1의 답이 같은 것.
숫자 1과 루트2의 크기가 다른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다름과 같음의 기준으로 줄 세우는 것은
결국 힘있는 자, 힘을 쓰는 자의 입장에 따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네팔과 한국은 다르다.
카트만두와 멜람치는 다르다.
브라만과 옐모는 다르다.
베시와 멜람치는 다르다.
이주연과 오지산은 다르다.
이비실리와 푸르나 sir도 다르다.

다르다, 고 이야기할 수 있는 전제는 곧 같다, 이기도 하다.
같은 것이 있어야 다른 것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돈의 기준은 무엇이고, 교육, 배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교과서가 없는 무늬만학교 이지만 분명 무언가 만져지는 배움이 있고,
산 속 마을에 사는 매매의 눈빛에도 배우는 것이 있다.
사람은 스스로 배울 수 있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존재라 그렇다.
수많은 다름과 수많은 같음을 발견하며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을 낚아가는 시간이다.




11.25 다시 멜람치 컴백.

11. 25
카트만두, 서울, '도시'라 불리는 곳들은 너무 많은 것들을 가졌다.
정보도, 사람도, 생각도, 감정도, 돈도, 가게도 모두 과잉이다.
정도가 지나친 과잉이고, 성찰이 없는 과잉이라 빈틈의 결핍이 따른다.
카트만두에서 지낸 일주일의 시간은, 나에겐 과잉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한 방어와,
그 결핍을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다시 멜람치. 다시 인사를 나누고 썬처이 추, 허줄, 훈처를 입에 담는다.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것은 결국 나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다.
그래서 때론 그것이 부담이기도, 불편이기도 하다.
내 마음이 편안하고 마음의 거름망이 순조로워야 누군가에게 내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 즐겁다.

잘 산다,의 반대가 못 산다, 일까.
무겁다, 가볍다, 그리고, 좋다, 나쁘다, 훌륭하다 뭐 이런 단어들이
가끔 썩 내키지가 않는다. 실은 자주 그렇다.
잘 사는 것의 반대가 못 사는 것일리 없는 것 처럼
무언가 새로 느끼는 것, 새로 보는 것, 다르다고 느끼는 것들을
어떤 기준선을 두고 평가하는 일 자체가 썩 내키지 않는다.
잘산다, 좋다, 훌륭하다, 이러한 누군가의 기준치를 '만족'시키기 위한 언어가 아닌,
어떻게 사는지 무엇이 좋은지 어땠기에 훌륭한지가 궁금하다.
그래서 내가 애들에게 던지는 무수한 질문은 곧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며,
우리가 이 시간과 공간에서 가장 크게 느끼고 있는 것은
질문, 스스로 배우기 위한 질문, 더 나아지기 위한 질문,
서로 인정하기 위한 질문, 더 나은 변화를 만드는 질문, 질문이다.
그 질문의 힘을 갖는 것은 곧 내 삶을 만들어갈 힘을 만났다는 것이기도 하며,
누군가와 함께 살기 위한 준비의 시작이기도 하다.
오늘도 우린 질문을 했다. 사는 것에 대한, 나에 대한, 배고픔에 대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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