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1-05 21:07
1020-1027_캐트맨두. 똥이 굴러들러온 네팔.
 글쓴이 : 정이가령
조회 : 1,709  
10.20. 광저우 공항. 하루 공항 노숙.

여기는 광저우. 잘 왔다. 오기 직전까지 참 많은 인사를 나누고, 받았다.
떠나있는 시간을 떠나, 시공간의 변화를 만드는 순간에는 같은 시공간을 공유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진해지나 보다.
고작 두달 떠나 있는 건데, 떠나있다기보단 네팔에 있는 건데 뭐 그리 많은 인사를 나누었나 싶지만 그렇게 서로 하메하는 시간들을
확인하기도 했다.
무튼 잘 왔다. 정말 사무실을 나서는 그 순간까지 많은 일들을 처리하고, 남은 일을 나누고, 짐을 챙기고,
꼭 챙겨야하는 것들을 빼먹지 않았는지 몇번이나 신경을 썼다. 결국엔 밤을 샜고 짐은 너무 대충 싼 나머지
너무 많은 것들을 들고 와버렸지만 마음은 참 홀가분 하다. 이미 떠났고 지금은 어제와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에
있다는 것이 많은 걸 털어내게 하나보다.
이제 네팔을 만날 시간. 근데 마지막으로 우유에 에스프레소 넣은 안 단 까페라떼가 먹고싶당 킁킁.




10.21.  카트만두, 타멜 도착

공항에서의 노숙은 두번째였다. 딱 10년전 말레이지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잔 이후로
그땐 되게 잘 잤는데 오늘은 허리가 너무 아파서 힘들었다. 임지오의 디카를 찾으러 여기저기 당기면서
중국 사람들이랑 몇마디를 나누었는데 조금의 성향들이 느껴졌다. 성격이 급했고 목소리가 컸다.
비행기에서 읽은 소설이 흥미진진하다. 몇년만에 읽는 소설. 무엇보다 삶의 묘사가 탁월하다.
어느샌가 우리는 이렇게 여행을 하고 있다. 모르는 것, 낯선것을 어찌해야할지 몰라 허둥지둥되는 것도,
새로운 공기에 적응하느라 콧물을 훌쩍이는 것도, 무엇하나 누가 대신해주지 않고 내 먹을 것,
내가 살 것에 대해 필요한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다. 혼자도 묻고, 함께도 묻고 잘 모르겠으면 같이 이야기하고
무언가 힘들고 어려우면 한명에게라도 덜어내고 그러자.



10.22. 박타푸르 첫날. 띠하르(빛의 축제)

박타푸르는 조용하다. 박타푸르는 박타푸르다. 3년전 혼자 왔던 박타푸르와 지금은 분명 다르다.
두달 후 다시 왔을 때에도 무언가 다를까.
애들은 귀엽고, 개도 귀엽다. 어찌보면 여행은 감탄하는 시간이다. 작은 것에도 큰 것에도 감탄해보기.
일상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 익숙해 미처 하지 못했던 감탄들을 연속해하는 시간.
아 좋다, 아 맛있다 아 예쁘다 처럼 감정을 느껴보기. 야채 사는게 재미있었다. 내일은 버섯과 더히를 더 먹을까.
네팔은 쌓인 시간이 있다.



10. 24 박타푸르에서 다시 타멜로 온날.

인천 공항, 광저우, 트리뷰반 에어포트, 너바나 피스홈. 첫 카나. 박타푸르. 리마 다이네. 불꺼진 달밧. 더히더히더히더히더히더히더히더히더히.
네와르 3층 집. 200년이 쌓여있는 거실. 골목길. 해피 띠아르.
박타푸르와 띠하르.
신을 모시는 사람들은 모두 예술가가 되나보다.
신을 모시는 그 마음.
뜻을 바라고 하는 의례가 아닌,
신과 만나고 싶은 마음. 신과 연결하고 싶은 마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 정성.
나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느껴보지 못한 것이라. 전기보다는 촛불. 나는 경이로웠다.
무언가 마음을 다해 정성을 얹어보는 것. 그냥 웃어보는 것. 내게 따뜻했던 웃음은 리마 다이네서 만난 그 버히니와 다이.
아침을 시작하며 찌아 한잔을 나누는 것. 그렇게 모여 앉은 아저씨들의 웃음 소리를 한국에서는 들어본적이 없었다.
낯선 것들에 감성이 열리고 무언가에 자극되는 시간. 그런 여행의 시작.
그래서 예민하기도 즐겁기도 감탄의 연속이기도 무기력하기도 한 그런 여행의 시작.
하나도 아니고 여섯, 일곱, 여덜,.. 수 없는 사람들과 만드는 여행이라 결국 사람으로 느껴지는 여행이라
시작의 과정은 더 어색하기도 낯설기도 하다.
잘 걷고 있다.
반짝반짝 질리밀리.
지금 이 시간엔 무엇이 빛나고 있을까.




10.25 한주나눔.

지금까지 이상 이라는 것은, 꿈꾸는 것, 바라는 것, 소망하는 것, 꼭 언젠가 닿아보고 싶은 것이라 생각했다.
나의 이상, 너의 이상, 우리의 이상. 그런데 그 이상을 이야기하는 우리는 언젠가부터 퍽 부정적이다.
"넌 너무 이상적이야", '넌 이상에만 빠져있어".
네팔에 와서 그런 생각을 한다.
이상은,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을 때 혹은 바라보지 못할 때
그 이상을 시작할 수 있는 거구나.

자로 잰듯한 논리,
빈틈없는 이성,
유일한 표현수단인 숨막히게 빼곡한 언어들,
생각, 생각 생각,
이었던 한국과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믿음,
터져나오는 감정들,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신의 존재.

한국에서는 너무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며 살아 여기서
이성의 껍질을 벗고 나오는 맨몸을 만나고 있는 네팔이다.

똥을 밟았다, 가 아니라 똥이 굴러들어왔다.
그 굴러들어온 똥이 만든 내 마음의 한켠.
마음이 편한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다행인지
어쩌면 아무 조건없이
아무 목적없이 신을 느끼고 바라는 마음이
마음의 평화를 안겨주기도 한다.
건드리는, 거슬리는 모든 것들에 투명하길.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문제들로 부터 자유롭길.

한 국가에 체류하는 데 있어 유일한 법적 보호인 '비자'.
그 비자 년도를 잘못 써주어, 이미 만료된 비자를 발급해준 공항 입국 심사대,
그 잘못된 비자를 빨간 펜 한줄로 찍찍 긋고 '버요(다 됬어)'라 웃으며 내미는 이미그레이션.
그래 이 곳은 네팔이었다.


띠하르. 빛의 축제이자, 네팔의 새해와 겹쳐져있는 축제라
더 떠들썩했어.
신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예술가가 되나봐.
신에게 닿고 싶은 그 마음을
저 마다 대문 각각마다 그려놓고 새겨놓았어.
단 하나도 같은 것이 없고,
발디딜틈 없는 골목길에서도
사람도, 오토바이도 그 그림을 밟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
마음을 다해 정성을 얹어 소망해보는 것.
나로선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라
경이롭기도 혼란스럽기도 한 그런 풍경이었어.
 
이렇게 시간은 금방 가겠다.
마음이 편한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다행인지 어제 오늘 아주 제대로 느낀다.
어쩌면 아무 조건없이, 아무 목적없이
신을 느끼고 바라는 마음이
마음의 평화를 안겨주기도 하나봐.
 
마음 편하게 지내고 있길 바래.
건드리는, 거슬리는 모든 것 들에
투명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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