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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의 히말라야 서쪽 답사 보고서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3-09-14 (토) 11:24 조회 :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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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네팔의 그 위대한 땅의 원형이 시작된 곳이라 말하는
WEST NEPAL로 일과 탐험과 여행이 기막히게 충돌되는 시간을 보내고 왔다.
정확한 예측과 준비가 불가능한 네팔에서 꽤 많은 산행과 답사를 해 왔지만,
이번처럼 '불확실성의 동시성' 을 경험한 적은 처음이다.

네팔의 서쪽은 확실히 카트만두, 또는 우리에게 익숙한 히말라야 트레킹 지역과는 다른 곳이었다.
그리고 그 곳이 쉽게 접근하지 못할 '오지'라는 의미는, 네팔 사람들에 해당된다기보다는
우리 같은 타인이 가기 쉽지 않은 곳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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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 있을 프로젝트를 위해서 반드시 찾아가야 할,
네팔 서쪽의 무구 지역 밤바다 마을을 가기 위해서 선택한
''은...

카트만두에서 네팔건즈까지의 거리는 약 520km이며,
적도와 대결할 만할 해발 300m 이하의 네팔건즈까지 13시간 이상을 미니버스로 달려가는 4월의 온도는 40도를 넘나든다.
사전 예약이 가능하고 지정좌석제이지만, 15인승 승합차에는 보통 25명 정도를 구겨 넣는다.
혹시 에어컨을 상상한다면 강력 수면제를 먹고 잠시 '임시 사망'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그리고 다시 바람과 운에 몸을 실은 경비행기를 타고 산 속의 도시 '줌라'까지 간 후 10시간이 넘는..
무작정 걷기가 3일 이상 필요한 길을 선택했다.

경비행기 두 번을 타면 쉽게 갈 수도 있지만 그들의 길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들이 걷는 길을 걸어야 했고,
가는 길에 네팔에서 가장 거대하고 아름다운 'RaRa' 호수를 만날 수 있으며
또한 비용 역시 1/5 수준으로 줄일 수 있었기에 당연히 거쳐야 했을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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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현지인들의 안내에는 그리 어렵지 않고 가끔은 호텔도 있다고 했지만,
서부 네팔의 초행길은 하루에 몇 번씩 우리의 상상들을 무너뜨렸다.
혹시나 해서 준비한 비상약과 비상식 그리고 침낭이 없었다면
아마도 현지인들도 불쌍하게 여길 '우아한 거지' 가 되었을 것이다.
외국인 트레커들이 다니지 않는 산마을 사람들만의 길이라 롯지나 편의시설은 없었다.
즉 내가 그 곳에 맞춰야만 행복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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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세기 이전까지 카트만두 왕국에 간섭을 받지 않은 완전한 독립국가였던 서부 네팔은
인도에서 넘어온 하두르샤 왕국에 의해 정복당했다.
결국 서부 네팔은 인도에서 넘어온 라지푸트 귀족(바훈), 서부 네팔의 원주민인 아리안 족의 후예 파르바티아(체트리),
그리고 히말라야에서 넘어온 티벳족의 문화와 삶의 방식이 공존하는 곳이 되었다.

때문에 서부 네팔의 특징이라 한다면 히말라야의 자연환경과 연결되는 전통적 샤머니즘과 인도에서 건너온 힌두,
그리고 히말라야 티벳인들의 불교문화와 삶의 방식이 교묘하게 혼합되어 있는
'다문화적 삶의 방식' 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며 네팔어의 본류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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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 네팔의 가옥 구조를 보면 다문화적 삶의 방식이 그대로 나타난다.
반건조 날씨에 어울리는 흙과 지붕과 나무로 만든 사다리는 전통적인 티베트인들의 가옥구조이다.
때문에 서양의 학자들은 힌두교도가 티베트인들의 가족구조에서 사는 유일한 곳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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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곳에는 천상의 호수 하나가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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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호수는 해발 2900m의 산 속에 숨어 있는, 네팔에서 가장 큰 호수이다.
국립 공원으로 지정된지 30년도 안 되었지만, 주변의 숲과 하늘 속에 담겨 있는 이 거대한 호수는
인간이 찾아야 할 평온한 정신과 마음을 비춰 주는 거울처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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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간의 고생 끝에 도착한 라라호수에서 하루의 쉼을 가져 본다.
무구 지역에서 유일하게 샤워를 할 수 있는 롯지도 하나 있었다. 오랜만에 숨고르기를 하며 뒤를 돌아본다.
함께 우수명 교수와 진정한 인간의 복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지배하고 빼앗은 역사의 과정을 채워넣기 위한 복지는 이 히말라야 땅에 필요하지 않음을 공감한다.
그들이 본디 가지고 있었던 삶의 에너지를 발견하는 일이 더 아름다움을 강조해 본다.


편안한 쉼을 하던 중 종교의 나라 네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명상 수행인을 만났다.
Mono Kranti Meditation 명상 센터의 수행자이며 수년 간 히말라야를 돌면서 명상과 수행 그리고 포교를 한다고 한다.
Mono의 뜻은 정신이며, Kranti의 뜻은 혁명이다...
롯지에서 일하는 아이의 갈라진 손을 만져 주며 기도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나도 명상기도를 청해봤다.
[히말마 버스네 만체허루 꼴라기, 코리아러 네팔마 버에꼬 엔지오 품 깜 꼴라기, 러 메로 떠뻐셰 러 지번 꼴까기 거레 디누스...]
히말라야 사람들과 한국과 네팔 엔지오 품을 위한 명상기도를 원한다는 네팔어를 하니가 적어준 대로 읽어 줬더니
아침에 만나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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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목적인 무구 밤바다(Bhambada) 마을에 도착하기 전까진 내가 이 곳에 온 본래의 목적을 잊고 있었다.
서부 네팔이 지키고 있는 원형의 문화와 예측하기 힘든 풍경들,
그리고 방금 느낀 아름다움을 바로 잊게 만드는 힘든 발걸음들이 여행의 목적을 상실하게 했다.
그것은 히말라야가 준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무언가를 이루려 하는 목적의 상실이란 때론 삶의 상실이 아닌 새로운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타인의 삶을 용서할 수 있는 진지한 긍정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히말라야가 준 또 하나의 속삭임...
'길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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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곳 무구 밤바다까지 걸어오게 한 사람은 이 마을 출신의 '민'이라는 청년이다.
오랫동안 지켜온 마을의 전통과 문화는 현재를 살고 있는 청년들로 하여금 마을 극단(Karnali Theatre)를 만들게 했고,
이 마을 극단의 대표 겸 감독이 민이다. 2년 전 가끔 들르는 카트만두 구르쿨 극장에서 우연하게 이들의 공연을 본 이후
민과의 인연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작년, 민은 나에게 제안서 하나를 건넸다.


Dear Sir / Shim
It's our pleasure to let you know that we have submitted a proposal for the project entitled "Reinforcing cultural ties between Nepal and Korea through the inter country exchange of folk dance, music and theatre through the workshop and performance." This project aspires to be joint venture between the Nepali and the Korean theatre artists. We hope this joint project between PUM, Korea, and Karnali Theatre, Nepal, will open new opportunities for the further aesthetic and cultural joint ventures. We have tried to procure the essential information from our side. We hope this complementary project will be a big success. Thank you.

A Proposal
for
Reinforcing cultural ties between Nepal and Korea through the inter country exchange of folk dance, music and theatre through
the workshop and performance
Submitted to PUM, Korea


마을에서 자생적으로 만든 청년 극단을 만나는 일조차가 네팔에서는 처음이었고,
민의 매력이 더해져서 품을 움직이게 했다.
결국 올해 경기문화재단의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정이 된 것이다.

결국 이번 여행의 목적은 한국에서 10년 넘게 품과 인연을 나누고 있는 극단 진동과 연출가 박종우,
그리고 서부 네팔 꺼널리 극단과 열혈 청년 민을 만나게 할 기막힌 작전을 위한 사전 만남이며 답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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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청년 배우들을 만나야 했고, 서부 네팔 꺼널리 계곡 무구 밤바다
마을 사람들의 향기와 그들의 문화를 느껴봐야 했었다.
* 무구(Mugu)는 큰 도시 이름이며, 밤바다(Bhambada)는 마을 이름이다

산간마을에서 자생적으로 조직된 꺼널리 극단은 기존 도시에서 활동하는 전문 극단과는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다.
마을의 전설과 설화, 마을의 전통적 문화와 관습과 종교 그리고 삶의 모습을 담은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매우 독특한 형태의 공연 방식으로 표현한다.
또한 규정된 관객을 위한 세련된 공연이 아닌 자신들의 문화를 주변의 주민들과 나누는 방식이며,
공연의 형태 역시 우리의 '굿'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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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이 제안한 것은 한국 극단과의 쌍방향 문화예술교류였다.
단순한 공연 교류가 아니라 상호 지니고 있는 문화적 예술적 영감과 가치를 교류하자는 제안이었고,
그래서 제안서의 내용 중에 가장 큰 비중은 공연이 아닌 워크숍이었다.
꺼널리 극단과 가장 아름다운 파트너를 생각하게 된 품은 10년 넘게 함께 작업을 해 온 극단 진동을 제안했고
또한 지역문화의 성장이라는 취지 아래
품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광명 문화의집과 함께 광명 지역과의 교류를 추진하기로 했다.

오는 10월 무구 마을의 청년들이 한국으로 초청되고,
극단 진동의 배우들과 광명 청소년들과 함께 일 주일간의 워크숍을 가진 후
광명 시민회관에서 합동 공연을 열 계획이다.

상상만 해도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모든 과정들이 생각대로 되지 않듯이 무구 마을의 꺼널리 극단은
얼마 전 내부적인 문제로 극단이 두 개로 나눠지는 일이 생겼다.
같은 마을에서 두 개의 청년 조직이 나눠지는 것은 매우 불안한 일이기도 하다.
민의 팀을 떠난 또 하나의 팀은 현재 카트만두 구르쿨 극단과 연결하여 매우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고,
국제단체의 지원도 받으며 무구 지역 순회공연도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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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해서 민의 그룹은 주요 배우가 다른 극단으로 빠져나갔거나 생계를 위해서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배우들이 많았고,
지금은 대부분 10대 중심의 신입회원들로 채워져 있었다.
매우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인연을 시작한 민의 친구들을 만나러 이곳까지 오게 되었고,
우리는 그들과 함께 또 다른 희망을 함께 만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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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산간지역을 가르고 있는 Karnali 계곡에 자리잡은 민의 마을 Bhambada는 해발 2,200m~2,700m 사이의
중산간 지역으로, 현대적 문명의 시각으로 보면 매우 열악한 삶의 환경이라 할 수 있다.
히말라야의 산간마을 대부분이 다르지 않듯이 이곳 역시
주거, 보건, 교육 등의 생활 환경이 매우 낮은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얼마 전 Karnali bright라는 엔지오 덕분에 집집마다 태양열을 이용한 전기 사용이 가능해졌고,
산간마을 중에서는 학교의 수가 많다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100년 전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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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답사와 민의 꺼널리 극단 청년들과의 만남 이후 민과 우리는 촛불 아래서 이른 새벽까지 논의와 제안을 반복했다.
결론은 한국에 와서 완성된 멋진 공연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히말라야 산간 마을 순수한 청년들의 아마추어리즘을 발현한 진정성 있는 쌍방향의 문화적 교류와,
이러한 과정 속에서 밤바다 마을 청년들의 성장과 지역문화의 성장을 기대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이들은 이미 자신들의 연극을 통해서 지역에 뿌리 깊게 자리잡은 카스트에 대한 변화와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계몽 운동을 시작하고 있었기에, 히말라야가 준 인연과 인간으로서의 믿음을 만들어가기로 했다.

이제 다시 카트만두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준 민네 가족과 마을 청년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마지막 화장실을 들어가 본다.
가는 길에는 정식 화장실이 없기 때문이다. 그 동안 히말라야의 열악한(?) 화장실에 익숙해져 있지만
이곳의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는 5분 전부터 공포감에 떨어야 한다.
집집마다 화장실이 있는 것이 아니고 몇 집이 함께 사용하는 공동 화장실이며, 중요한 것은 너무 비좁다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 앉으면 모든 몸의 부위가 벽에 밀착되고 숭숭 뚫린 나무벽 구멍으로 지나다니는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 밖에 있는 사람들도 나를 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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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을 어렵게 온 만큼 돌아가는 길 역시 녹록치 않다.
2900m에 있는 라라공항까지 걸어서 올라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라라공항에서 네팔건즈까지 가는 경비행기가 정해져 있지 않고,
오로지 하늘에 정한 운명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귀국 일정이 넉넉치 않기에 하늘에 운을 맡기고 라라공항으로 올라간다.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면서 행복한 상상을 해 본다.
그래도 공항이니 호텔도 있을 것이고 매점도 있을 것이니... 시원한 맥주 한 잔! 그런데....
Oh my donk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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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공항은 공사를 시작한 지 30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직도 공사 중이며 당나귀의 쉼터이기도 하다.
외국인 관광객이 별로 없으니 비행기 운항도 주인 맘이다. 하지만 산간마을 사람들의 곡물이나 짐을 실어 나르는
정부 헬기가 자주 있기는 하다. 내일 비행기가 없으면 콩이랑 보리랑 함께 정부 헬기를 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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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자연과 시간'을 조율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한다.
도시의 문명에서는 '시간과 상황의 예측'이란 자만심이 매우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인간이 과연 자연과 시간을 예측하고 조율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정말 가능한 세상에는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히말라야에서의 여행이나 일 속에는 항상 무언의 가르침들이 숨겨져 있다.
네팔의 서쪽 끝에서 중앙의 카트만두까지 뛰어가는 행위는 우리네의 스포츠 이벤트와는 개념이 다르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왔고 아직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아직도 자연과 시간을 조율하는 상상보다는 자연에 기대어 있는 삶의 방식에 익숙하다.
호텔의 방문이 2년 동안 열리지 않았으면서도 그들은 성급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언젠가 손님이 찾아올 것이며 그 때 문을 열면 되는 것이다. 열쇠가 없다면 손님과 함께 문을 따면 되는 것이다.

다음날.. 우리는 운이 좋았다. 네팔건즈에서 라라공항으로 오는 비행기가 있었기에
아주 작은 6인승 비행기를 어렵게 탈 수 있었다.
이 작은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보는 히말라야 서쪽의 풍경은 결코 작지도 좁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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