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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 대한 고민

글쓴이 : 희말라야무… 날짜 : 2019-04-01 (월) 13:58 조회 : 81

아름다운 실존의 근거 청년 인문실험

생존인가? 실존인가?

청년이라 함은 불타는 열정과 거침없는 자유의 상징과도 같았다

청년이라 함은 팍팍한 일상이 쪼그라들지언정 정의 또는 진실을 향한 당당한 시도와 실천의 상징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 이야기이다. 지금의 청년은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로서의 고유명사가 되어가고 있다. 청년의 존재, 청년의 가능성은 청년실업이라는 사회적 해결과제로서 구속되어가고 있다. 국가와 사회가 저질러 놓은 사회적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본질은 잘 보이지 않는다. 청년창업, 청년지원 등 당장 수치로서 결과를 보여줘야 할 과제로 즉 생존의 문제로만 그 해결방안들이 쏟아지고 풀어지고 집중되고 있는 듯하다.

 

성장은 신용을 팽창시켰다. 성장의 종말은 신용의 종말이다. 부채에 대해 지금생기는

이자를 상환할 잉여 소득이 나중에 생기기 않을 것임을 모두가 점차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리차드 하인버그(Richard Heinberg) ‘제로성장의 시대가 온다.’

 

신용불량의 사회는 경제적 불평등에서 나타는 불안감만이 아닌 타자와 세상과의 관계를 두렵게 만들며 국가와 사회가 요구하지 않는 비현실적인 시도들을 가로 막기도 한다. 그리고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자유의지(Free will)를 불량하게 만들어낸다. 이러한 사회적 압박들이 정상적인 듯 가동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청년들이 가지는 불안감은 위험의 수치를 넘어서고 있다. 이 불안감은 좌충우돌하며 얻는 삶의 경험으로서의 불안감이라기보다는 사회와 기성세대의 불안감들이 전이되기도 하며, 자발적 복종이나 체념을 강요하는 보이지 않는 일상들 속에서 축적되고 확장된다. 결국 생존의 문제와 실존의 문제는 동일선상에서 시작될 수 있어야 한다.

 

공동의 목적, 수익 등 객관이 지배하는 생존의 공간. 그곳에는 내가 빠져있다.

실존의 공간은 자아와의 대화가 가능하고 자기실존을 만날 수 있다.

자신만의 판타지의 공간이다.

 

돌연변이 그리고 사회적 유성생식의 역동성이 진화의 키워드이다?

 

무성생식은 자기복제에 가깝지만 유성생식은 각각의 형질을 유전하면서도 전혀 다른 개체를

탄생시킨다. 유성생식은 생명체의 진화 역사에 획기적인 발전의 상징이다. 유성생식에 의해

새로운 개체를 탄생시킬 뿐만 아니라 돌연변이의 확률을 높인다. 돌연변이는 환경조건이나

생물체의 필요와 아무 관계없이 일어난다. 돌연변이는 무작위로 발생한다. 돌연변이가 모두

진화하는 것이 아니므로 에너지의 낭비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국 진화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 nonArt.butArt 박찬국

 

생물시간에 틈틈이 졸았어도 무성생식과 유성생식의 차이를 모르는 이가 없겠지만 사회적 유성생식의 역동성이라는 난해한 철학적 비유는 내가 짝사랑하는 아티스트 박찬국 선생으로부터 빌려온 화두이다. 개체와 개체의 충돌이나 관계도 없이 다량의 복제가 가능한 무성생식은 지금 우리사회의 속도와 욕구를 대변할 수 있는 표현일 수 있다. 무성생식이 지니고 있는 복제의 힘은 성찰이나 진화 따위의 과정들을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당장 필요한 것을 해결하기 위한 다량의 공급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듯하다. 결국 과정의 신비함이나 새로운 역동성을 만들어내지 못하며 불안한 기생생물처럼 소진되어간다.

 

커뮤니티아트는 커뮤니티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커뮤니티에 속한 개인을 위한 예술적 과정이라고

생각 합니다 (순전 내 개인적인 생각) 즉 커뮤니티 안의 다양한 개인의 가치가 공존하면서 존중

받고 그 차이의 긴장감이 공동체에 긍정적인 자극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과정들 즉 차이의 공동체

만이 전체주의적 목적성을 경계하고 반성할 수 있을 것 이라는 자율적 상상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은 Let it Be입니다. 그냥 나두는 거지 뭐..

- 무늬만커뮤니티 김월식

 

아티스티 김월식이 말하는 차이의 긴장감즉 동질성과 이질성들이 서로 엉키어가며 관계의 상호작용들을 만들어갈 때 비로써 역동적 존재(돌연변이)들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역동적 존재들의 생성과 이 과정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무형의 담론과 태도와 실천들을 사회적 유성생식의 역동성이라 해석해볼 수 있다.

 

자조(自嘲)스스로 자기를 비웃음이란 뜻이며 자조(自助)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스스로 애씀을 뜻한다. 스스로 추락하는 것과 스스로 일어서는 것을 판단하는 기준점이 경제적인 상황이나 수치로 결정될 수 없듯이 자립이라는 개념이 개인의 증식과 같은 먹고살기 위한 경제적 관점으로만 해석된다면 결국에서는 스스로 자기를 비웃어야 하는 시간을 만날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으로 사회적 불평등이 시작되지만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해답을 경제적인 독립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남에게 의지하거나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섬이라는 자립의 지니는 보편적 의미에 추가되어야 할 단서들이 적지 않다. 앞의 엉뚱한 가설들을 통해서 제안했던 개인의 증식을 넘어서는 타자와 집단과의 관계성, 차이의 불편함과 긴장감이 충돌하며 생성되는 또 다른 공동체성 그리고 사회적 유성생식의 역동성들이 갑자기 몰아치는 폭풍우가 아닌 상쾌하고 선선한 가을볕과 같은 갈바람으로 불어올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조와 자립의 집단들이 만든 또 다른 소외와 장벽들도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청년들의 자조와 자립의 과정에 기성세대의 언어와 경험이 쌓여질 수 있어야 하며, 이미 지속되고 축적되어가는 기성세대(개인과 집단)들의 문화 속에 십대와 청년들의 온전한 주체성과 발랄한 창발성들이 공유되고 인정될 수 있어야 한다. 종다양성이 가지는 생태적이며 순환적인 의미들이 십대와 청년들이 실천해야 할 자조와 자립의 과정에 녹여질 수 있어야 한다.

 

생존과 실존의 유쾌한 실험 청년 인문실험

15, 16살 청소년들에게 몇 가지의 검사(적성검사, 진로검사 등)와 몇 가지의 직업군을 성공사례로 소개하며 먹고 살 것에 대한 선택을 하라고 제안하거나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10개월짜리 계약직을 남발하는 지금 청년 인문실험은 우리 사회에 대한 즐거운 반란과도 같다. 정규직 보장 또는 월 200만원 수준의 급여지급과 같은 달콤한 생존의 약속도 내걸지 않으며 개인과 사회적 가치를 연결하는 인문적 사유와 실천을 위한 작은 실험에 이렇게 많은 청년들이 환호할 줄은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청년 인문실험에 참여한 청년들에게 주어진 조건은 정산이 없는 200만원의 활동 지원금과 성과로 드러나기 힘든 응원과 지지 뿐이었다. 서울이나 대도시만이 아닌 전국 각지에서 100팀의 청년들이 참여를 했다.

 

청년 연극배우가 인문을 읽고 나누기를 시작했고 청년 디자이너가 자본의 도시를 다시 해석하기 시작했고 청년 작가가 마을 속의 미디어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특별하게 뽐낼 것이 없는 평범한 청년들이 일상 속 관찰을 통한 행복한 성찰을 시도했다. 처절한 생존의 시대에도 인문공부를 멈추지 않았던 청년들의 혼밥의 인문학적 대안찾기’, 자본과 개발로 흔들리는 을지로의 시공간적 역사를 다시 해석해보려는 청년들의 이공일구 을지로 동네달력 프로젝트’, 찌질한 생존이 아닌 당당한 욕망의 일상을 시도하는 청년들의 파자마 파티’, 스스로 만들어 낸 의무와 책임과 평가에 대한 저항으로 숨겨진 영혼의 욕망과 다양한 가치를 찾아가는 다중정체성을 탐색하는 청년들, 그 외에도 비혼여성, 평등, 책 읽은 코인 세탁방, 공정여행, 도시농업, 세대교감 등 생존을 넘어서는 실존의 사유, 탐색, 시도와 실험이 유쾌하게 발휘되었다. 청년 프로젝트에 인문을 조우하니 사유의 힘, 정신의 힘, 성찰의 힘이 드러난다. 그리고 청년만의 고립된 사유와 접촉을 넘어서는 다른 세대와 영역의 교감과 공존이 드러난다.

 

청년 인문실험은 돈이 보여야 지원을 한다. 또는 지원을 받으려면 보여 지는 결과나 성과를 드러내야 한다.’라는 공식을 버렸고 실제 그것이 가능함을 증명하고 있다. 전국에서 모인 100팀의 청년들이 조유했던 몇 번의 만남에서는 무거운 불안이나 두려움 또는 타자와 사회에 대한 막연한 분노는 보이지 않았다. 이는 생존으로 연결되는 취업설명회와는 다른 세계였고 또 다른 경쟁을 부추기는 기존의 공모사업들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또한 청년 인문실험에서의 가장 소중한 과정은 일상과 사유와 실험을 담은 기록이었다. 과장된 성과에 집중해야 하는 결과보고서가 아닌 각 자의 일상, 사유, 실험이 담긴 개인의 글쓰기는 개인의 실존을 드러내고 공유될 수 있는 아름다운 기록으로 저장되었으며 타자와의 진한 교감과 공감을 연결했다. ‘자유는 더 늘었지만 열정은 더 줄어들었다.’라고 말했던 제프 딕슨의 우리시대의 역설에 대한 역설이지 않은가?

 

청년 인문실험의 가능성.

청년 인문실험은 공공영역에서의 시도였지만 행정과 시스템과 관성을 넘어설 수 있는 희망으로 해석해봐야 한다. 이번 과정을 통해서 보여 지는 결과와 성과에 대한 재해석을 가능하게 했으며 실존에 대한 청년들의 동기와 의지와 욕망을 충분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청년을 생존의 문제로 풀어가려하는 우리사회의 대안적 희망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미 서울시에서 시작한 청년허브’, ‘비전화공방서울등은 청년의 생존과 실존을 조금 더 다른 관점으로 대안적 가능성들을 축적해가고 있기에 청년 인문실험도 이 같은 실천을 조금 더 연결하며 확장해 갈 수 있어야 한다. 단 한 번의 실험은 쉽게 잊혀지는 퍼포먼스나 해프닝으로 마감될 수 있기에 유의미한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지속적인 실험은 멈추지 않아야 한다. 인간의 사유가 존재하는 한....

대가 이 땅의 청년이기를.... [ 강대근의 습작 ]

청년은 의존과 독립 사이에서 방황한다.

청년은 종속과 해방 사이에서 좌절한다.

청년은 순응과 저항 사이에서 고뇌한다. 결국

방황과 좌절과 고뇌는 도전과 창조의 세대로 거듭나는 산고임을..

 

새로운 무엇을 하기 위해서..

무엇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청년은 이중구속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청년은 익숙한 기성의 질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청년이라면

거기에 희망을 꿈꾸는 청년이라면...

 

사회를 읽고, 정치를 읽고, 경제를 읽고, 문화를 읽고

그리고 자신과 타인의 삶과 일상을 읽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어야 하고

그리지 않고도 그릴 수 있어야 하고,

말하지 않으면서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시대와 삶을

서둘지 말고, 게으르지 말고,

채우려만 하지 말고, 담아 낼 수 있는

'마음과 가슴과 영혼의 언어'가 필요하다.

소중하게, 나눠주며, 뜨거운 청년의 삶을 만들어 가자.

우리는 희망한다.

그대가 이 땅에 청년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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