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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사람, 기분 좋은 만남! | 주주 정수현님과의 만남(사진추가!)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3-07-05 (금) 18:44 조회 : 1897
 
“아... 저.. 어떻게 이야길 해야 하나... 제가 뭐 할 건 없고...”
올해 초 전화한통을 받았다. 하도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시기에 후원을 해지하시려나보다 생각했는데, 후원금을 증액하시겠다는 이야기였다. 변변치 못한 주주관리로, 유지만 해주시는 것도 감사할 판에, ‘증액하겠다’는 말을 이토록 어렵게 하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녀를 딱 한번 만난 적이 있다. 2005년이었던가.. 지역 내 한 초등학교 동아리 지원을 시작하며, 방송반 운영에 관한 자문을 얻기 위해 미디어전문가인 김태황 선생님(현 문화디자인 'Plan-B'의 PD)을 만나러 갔다가 아주 잠깐 동석을 하게 됐는데, 짧은 만남이었지만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이 인상이 남아, 돌아와 주주기록을 뒤져봤더랬다. 아, 한남전문학교에서 일하시는 주주님이시로구나.
“만나러 가고 싶은 데요”
이토록 기분 좋은 환대가 또 있을까. 허락해주심은 물론, 심한기 대표님의 대학선배가 얼마 전 교장선생님으로 오셨다며, 함께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도 해주셨다. 몇 차례 전화를 주고 받고, 같이 점심을 먹기로 약속을 잡았다. 3월 18일 아침, 한남동에 간다.

한남직업전문학교.
기다리는 동안 학교를 한 바퀴 둘러본다. 입구에 붙어있는
연혁을 보니, 1957년 ‘소녀원’으로 시작된 무척 오래된 학교임을 알 수 있었다. (1977년에 소년소녀직업훈련원으로 통합되었고, 1988년 한남여자직업훈련원으로 분리, 1995년부터 2001년까지 한남여자직업전문학교로 운영되다, 2002년 ‘한남직업전문학교’로 변경되었다.) 1977년부터 공생복지재단이 위탁운영하고 있는 한남직업전문학교는 교육비와 교재비, 재료비 일체가 무상으로 지원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미용과, 조리과, 멀티미디어과 등 8개 과목이 개설되어 있으며, 1년(주간)과정과 6개월(야간)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 15세 이상 55세 미만의 서울 거주자라면 누구든 입학할 수 있다.

12년.
그녀는 한남직업전문학교에서 무려 12년을 근무했다. 대학 졸업 후, 지역사
회복지관에서 10개월 정도 근무했던 것이 유일한 전직이라고 하니, 20대를 한남직업전문학교와 함께 지내 온 셈이다.
(심한기 선생님께서 후배들에게 입버릇처럼 하셨던 말씀, ‘10년은 해봐야 한다’가 생각난다. 한 가지 일을 10년 이상 한다는 것은 그 시간만으로도 대단하게 느껴진다. 헌데, 12년이라니!!! 한 직장에서 12년 동안 일한다는 거... 어떤 느낌일까?)
그녀는 한남직업전문학교 총무지원과에 있다. 현재 재단 간사 역할을 겸하며 총무지원과에서 인사관리를 담당하고 있지만, 그 전에는 주로 교학팀, 기획팀에서 학생지도, 상담 및 생활지도, 교양수업 등 학사와 관련한 일을 하셨다고 한다.
“(총무지원과에 와서) 1년간 정말 힘들었어요. 학생들하고 부대끼며 일할 때 재밌었는데... 아이들 만나는 게 천성인가 봐요.. ^^”

인연. 그녀가 처음 품을 알게 된 것은 1996년, 그해 3월 입사하여, 한창 정신없을 때였다고 한다. 당시 한남직훈의 주임으로 계셨던 정우진 선생님이 ‘일 잘하는 세팅을 보여주마’하고 대학후배이기도 했던 품의 심한기 대표님과의 만남을 주선한 것이 계기였다고.
“그 후 한동안 뜸했다가... 다음해였나? 신학기 OT 때 심한기 선생님을 모시려고 전화를 했는데, ‘나 바뻐!’하시면서 소개해준 것인 김탕(김태황)이었어요.”
그렇게 인연이 된 세 사람은 카톨릭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서 다시 만났다. 경력 우선인 선발 과정, 면접장에서 두 사람을 만나고 ‘떨어졌구나..’ 싶으셨단다. 걱정과는 달리 세 사람 모두 합격! 했으나, 심대표님은 첫 수업 이후로 보이지 않았고, 정수현 선생님과 김태황 선생님은 청소년복지학과 석사과정을 모두 마쳤다.

후에 만난 심대표님과의 일문 일답.
정 : 왜 그만두셨어요?
심 : 배울 게 없어서
정 : 돈이 없으시죠?
심 : 너... 뭘 좀 아는구나?

익숙한 유머가 상상되어 웃음이 터진다. ^^
(오해가 될까 한마디 덧붙이자면, ‘배울 게 없다’는 그의 대답은 ‘자만’이라기보다는 ‘고집’일 것이다. 주위 선후배들의 오랜 권유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는 ‘학위취득’을 거부하고 있다. 그의 희망 중 하나는 사회가 요구하는 자격을 뛰어넘어, 당당히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이며, 나는 그런 그의 ‘고집’을 지지한다)
“후에 몇 번 품에 방문했어요. 참 필요한 일을 하는 단체구나.. 생각했죠”
그렇게 그녀는 품의 주주가 되었다. 2002년의 일이다.

자각(自刻)
“작년 말.. 1년을 정리하면서 매우 민망했어요. 살면서.. 두 군데 정도는 뜻 좋은 단체를 후원하겠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품과 월드비전을 같이 시작했는데.. 그동안 참 무심했구나.. 하는 자각이 든 거죠. 버는 거에 비해 후원금도 관심도 너무 적었더라구요. 미디어나 문화.. 내가 관심 있는 데는 돈 아까운 줄 모르고 투자하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죠”
품의 주주가 되고 후원을 하는 저마다의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 의미에 대해 품 또한 너무 무심했다는 자각을 한다. 해마다 그 의미를 되새기며 자기를 반성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이며, 또 얼마나 희망적인가.
약속한 점심시간이 되어, 한 시간도 채 못된 인터뷰를 아쉽게 마무리한다. 품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없으신가 물었더니, 증액 후에 월드비젼에서 받은 감사편지 이야길 해주셨다.
“(후원자 관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단체이기도 하지만, 생각지 못한 세심한 배려에 ‘내가 참 잘했구나’ 싶었어요. 조금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녀가 느꼈던 민망함이 이런 것이었을까. ‘아차’ 하는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솔직한 충고에 한편 힘이 나기도 한다. 언젠가 그녀에게 ‘내가 참 잘했구나..’하는 행복한 만족을 만회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녀가 사 준 점심을 먹으며, 10년 만에 만났다는 심한기 대표님과 윤동인 교장 선생님의 재회를 함께 했다. 긴 시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익숙해 보이는 두 사람. “10년 만에 만난 사람들 같지 않아요” 했더니, “늘 마음에 있었으니까” 라고 교장선생님이 말하셨다.

늘 마음에 있어, 오랜만에 만나도 익숙한 품이었으면 한다.
짧은 만남이 못내 아쉬워, 다시 한번 만남을 청해봐야겠다. 좀 멀지만..
우이동에 여행 한번 오시라고.. 땡강이라도 부려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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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두레품 2008년 봄호
* 글쓴이 : 유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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