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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내 삶에 가장 자랑스런 이력 | 주주 김현희님과의 만남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3-07-05 (금) 18:35 조회 : 1823
그와의 인연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역에서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청소년동아리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를 시작한지 두해 째 되는 때였고, 그는 청소년문화예술아카데미를 공동주관했던 창동청소년문화의집<다즐>에 새로 온 직원으로 처음 품을 찾았다. 모처럼 맘이 맞는 젊은 실무자들을 만나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많은 상상을 키웠던 <다즐>과의 인연은 그해 아카데미를 끝으로 더 이어지지 못했지만, 그는 이듬 해 6월까지 <다즐>에서 근무했고, <다즐>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이후에도 종종 공간이 필요하거나 공연장비가 없어 도움을 청할 때면 내 일처럼 달려와 주곤 했다.
그런 그가 정말 오랜만에 소식을 전해왔다. 부천으로 직장을 옮긴 후 얼마 안지나 의정부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다시 ‘동네로 오게 되었습니다’라는 이야기였다. 그를 만난 이년 사이, 벌써 세 번째 이직이다. 그 사연이 궁금하기도 하고, 근황도 들을 겸하여 그와의 만남을 요청한다.
‘9시쯤이 좋겠어요. 창동에서 만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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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도 품에게도 무척 익숙한 장소다. 포장마차가 즐비한 창동역 입구. 그 모퉁이에 여름내 동네 아이들과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던 창동문화마당이 있다. 이 시간 이곳은 찾기 쉬운 술약속 장소 중 하나. 파라오 노래방과 다정하게(?) 머리를 맞대고 있는 돌간판이 우스워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이 다가온다. “오랜만입니다. ^^”
근처 가까운 술집에 자리를 잡고, 주주와의 만남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음주인터뷰를 시작해본다. 이참에 화려한 그의 이력을 들어보자
호텔보이에서 청소년상담사까지..
“열아홉에 군에 입대했고, 1995년 1월에 제대를 했어요... 당시 YMCA에서 운영하던 ‘호텔학교’가 있었는데, 그 해 7월에 졸업을 하고, 강남의 꽤 유명한 호텔뷔페에서 웨이터 일을 시작했지요. 일명 ‘호텔보이’였죠..(웃음).. ”
‘호텔보이’로 시작된 그의 이십대는, ‘그 많은 이력을 어떻게 다 기억하나’ 신기할 정도로 파란만장했다. 호텔보이에서 나이트, 프랜차이즈 음식점 매니저까지.. 짧지 않은 시간, 요식업계에 종사했던 그는 스물다섯에 늦깍이 대학생활을 시작한다.
“서일대학교 레크레이션과에 98학번으로 입학을 했어요. 주말마다 레크행사 알바를 뛰었죠. 방학 때는 다시 요식업계 알바를... 학교 다니면서 이것저것 배운 것도 많아요. 풍물 전수관에 수제자로 들어가기도 하고.. 아는 선생님께 ‘춤 한번 해봐라’ 이야길 듣고, 의정부 무용단에 있은 적도 있었고요.. ^^ 졸업 후에는 주로 기업연수업체에서 일을 했지요. 주말마다 이벤트 출장 다니면서 1년을 보냈는데.. ‘아.. 난 다시 요식업이야’ 싶어서 잠깐 청담동 이태리 레스토랑에서도 일을 했죠. 스물여덟 살 때, 다시 학교로 돌아왔어요.”
다양했던 이십대의 경험 중, 그가 가장 자랑스럽게 꼽는 이력은 모교에서 조교로 일하며, ‘조교노동조합’을 만든 사건이었다. 초대위원장을 지내며, 교수님들과 껄끄러운 순간도 있었지만, 조교들과 학교 간의 공식적인 의사소통 통로를 만들 수 있었던 뿌듯한 계기가 되었다고.
그가 청소년 관련 분야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30대에 접어들면서부터였다. 서른한 살에 독립을 했고, 서른둘이 되던 해, 청소년위원회가 추진하던 ‘청소년동반자사업’의 상담사로 일하게 되면서 청소년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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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의정부에서 다즐, 부천의 청소년수련관에서 양주의 천문대, 다시 방학동으로 오기까지 그의 과정은 쉽지 않았던 듯하다. 그 중에는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환경과 조건을 가진 곳도 있었지만, 편안한 환경에 젖어가는 자신을 보면서 다시금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는 그의 말. 쉽기만 한 조직이 어디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새로운 일을 선택할 수 있었던 그의 용기가 한편 놀랍다.
내 삶에 가장 자랑스런 이력
그는 분명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많은 이력을 지닌 사람이다. 단순히 이력만 보자면, ‘지독하게 직장운이 없는 사람이구나’ 혹은 ‘사회성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단지 직장을 몇 번 옮겼는가 만으로그의 이력을 평가할 순 없을 것 같다.
그는 200점 만점이었던 수능을 시작으로 400점 만점이 되기까지 세 번의 수능시험을 치렀고, 늦은 나이에 대학공부를 시작해 스스로의 힘으로 학업을 마쳤으며,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 방통대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호텔보이’ 시절 만났던 미국밴드와 6개월간 동거를 시도하기도 하고, 노래가 하고 싶어, 밤에는 주방일을 보며 손님없는 낮타임 노래를 하기도 했다. 그는 내가 아는 어떤 사람보다 열심히 20대를 살았고, 쉬지 않고 공부하였다. 그 성실과 노력이 무엇보다 그에게 가장 자랑스런 이력이 아닐까?
삶은 징검다리 같은 것
고민 많은 20대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부딪히며 살라”고 답하며, 언젠가 선배에게 들었다는 말을 함께 전해주었다.
“현희야... 사는건 징검다리 같은거야. 건너가다 보면, 길이 나오는..”
마지막으로 ‘어떻게 살고 싶냐’고 물었다. 그는 “행복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그저 함께 하는 사람들과 ‘이해와 소통’이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희망과 함께.
현재 그는 노원청소년수련관 노원청소년수련관 청소년상담실에서 일하고 있다. 노원,동대문,중랑구 지역의 위기청소년들을 만나는 ‘청소년동반자’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청소년 관련 활동을 시작하며, 처음 했던 일이 ‘청소년동반자사업’이었으니, 그와는 각별한 인연인 듯싶다.
이곳이 그의 마지막 직장이 될지 아닐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행복해지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역시 어쩌면 ‘행복’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그의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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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두레품 2008년 봄호
* 글쓴이 : 유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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