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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품에서부터 시작된 마을배움터 이야기

글쓴이 : PUM 날짜 : 2018-10-16 (화) 16:20 조회 : 61
우이의 장소들 8. ‘동북권역마을배움터’ 언덕길을 올라가 골목 왼쪽을 쳐다보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공간 속을 걸어갔다.
“‘품 청소년문화공동체’ 강명숙 – 배움 앞에서는 모두가 아이.
어디에서나 배울 수 있고, 서로 배워야 하는 것.”

   ‘92년 품의 첫 시작, 왜 행복하냐. 어떤 의미냐 묻는 어른이 없어서’
 
   1992년 품 청소년문화공동체(이하 품)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대표님이 어린 시절 음악을 했었다고. 그때 음악을 통해 자기 나름의 세계가 넓어지는 걸 느끼고 행복감을 느꼈는데 주변엔 먹고 살기 힘드니 그만두라는 어른들이 많았다고 한다. 훗날 대표님이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음악을 했을 때 왜 행복하냐, 그것이 어떤 의미냐 묻는 어른이 없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됐다고. 그러한 깨달음 속에서 청년 세 명의 의기투합으로 처음 품이 시작되었다. 강명숙 사무국장님은 중학교 2학년 때 그렇게 시작된 품의 청소년 캠프에서 처음 품과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아주 참신하거나, 그럴싸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것을 지탱하는 철학’
 
   중학교 2학년 때 출발된 인연은 2002년 품에 입사하는 것으로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고 한다. 어릴 때 강명숙 사무국장님은 품을 이끄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저렇게 사는 것도 즐거워 보였다는 생각을 했다고. 특히 아주 참신하거나, 그럴싸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것을 지탱하는 철학 속에서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정신적인 성장을 느꼈던 것이 품의 매력이었다고 설명했다. 90년대 당시 품은 역사, 우리나라만의 정신, 우리만의 놀이문화에 대한 고민을 통해 자연이라는 키워드로 삶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고 한다. 처음 삶의 뿌리가 강에서 온다는 생각으로 실제로 청소년들이 강을 찾아갔고, 그러한 강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 끝에 강은 산에서 온다는 생각으로 산에 직접 찾아갔다고. 또한 마지막엔 이 물은 결국 바다에 간다는 결론으로 바다에 갔다고. 8박 9일 동안 작은 소모임으로 이루어진 각 모둠이 저마다 각지의 자연을 탐험하며 작은 여행들을 만들어냈고, 나중에는 모든 구성원이 만나 각자의 여행 경험을 공유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새로운 키워드 ‘지역’ 궁극적으로 아이들의 세상이 변화하지 않았기에’
 
   그러나 이 여행에서 또 다른 질문을 얻었다고 한다. 아이들을 만나서 하는 활동들은 너무 좋지만,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간 아이들의 세상이 변화하지 않았다고. 그리고 품은 아이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강북에 정착했다고 한다. 동네 아이들을 만나게 됐고, 열악한 청소년의 삶을 바꾸기 위해 축제를 시작했다고. 축제를 통해 아이들을 어떻게 건드릴 것인가. 이 시대상에 맞는 청소년 축제 문화란 무엇인가라는 고민 끝에 축제 속에 실제 청소년 스스로의 목소리를 청소년들이 담는 것이란 대답이 나왔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추락’(가을 추에 즐길 락. 중의적인 의미)은 20년째 지속되었고, 청소년축제기획단이 스스로 축제를 기획하는 과정을 만들어냈다 한다. 축제를 통해 아이들이 자신이 일방적인 교육이나 훈육의 대상이 아닌, 스스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구성원임을 알게 되는 축제.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과 아이가 함께 배우고, 성장하고, 아이들이 아이들의 욕구를 발견하는, 구조와 과정이 있는 축제.
 
   ‘배움은 어디에서나 가능하고, 서로 배워야 하는 것. 동네의 선생님을 찾아가다’
 
   강명숙 사무국장님은 축제가 계속되면서 두 가지의 질문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나, 축제는 그래도 하루면 끝난다. 다른 모든 일상이 축제일 수 없을까. 둘, 기존에 쌓아놓은 축제에 대한 기대와 역량이 있고 아이들의 환경이 변화하면서 여러 불안감이 극대화되었다. 과연 축제가 아이들을 정말 행복하게 하는가. 이때 바로 ‘지역’이라는 키워드를 잡고 ‘마을마실’이란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이 동네주민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자격이 있는 어떤 선생님들이 아니라 동네 단골 식당의 사장님. 지역에 사는 여러 사람을 찾아다니며 아주 ‘특별한 선생님’을 찾아가게 됐다고. 배움은 어디에서나 가능하고, 서로 배워야 하는 것. 그 선생님들은 같은 강북에 사는 주민이기에 한 번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인연을 맺게 된다고. 강명숙 사무국장님은 2000년대를 사는 아이들의 지역성은 무엇일까 고민했을 때. 단순히 어느 동네에 살고,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고 같은 것이 아닌 어디서 무엇을 하든 스스로가 사는 그곳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얘기하는 것이 바로 이 시대 아이들의 지역성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을마실’은 그것을 체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고. 마을은 세상과 세상의 시스템이 담긴 소우주고. 그 마을을 통해 배움으로 아이들 스스로가 사회적 존재임을 자각하고, 중요한 시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동북권역마을배움터의 탄생, 스스로가 하고 싶은 것을 도와주고 제안하는 공간’
 
   이후 강북에 동북권역마을배움터가 탄생하고, 품은 그것을 민간 위탁 운영을 맡게 되는 또 다른 변화를 맞이했다. ‘단체나, 어떤 인증된 특수한 사람이 아닌 모든 것으로부터의 배움’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서울시 조례 개정에 참여해 마을배움터라는 명칭을 제안했고, 이후 공개입찰 참여 과정을 거쳐 동북권역마을배움터의 운영을 함께 하게 됐다고. 서울에서 유일하게 청소년문화의집이 존재하지 않는 강북구에 청소년을 위한 공공 문화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이후 품은 마을 주민, 예술가, 청년, 10대들을 모아 같이 토론해 나갔다고 한다. 강명숙 사무국장님 ‘너희 일상이 어떻게 변화되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도와주고, 제안하는 공간’으로서의 마을배움터에 대한 의견을 털어놓았다고 말했다.
 
   ‘계속 부딪히는, 마주치는, 만남이 유발되는,
   이 공간에서 모든 것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이것을 토대로 세상에서 무언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현재 공사를 진행 중인 동북권역마을배움터는 북한산우이역 인근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강명숙 사무국장님은 도대체 이 공간을 지은 목적이 뭐야? 라고 질문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효율과 동선을 고려하지 않고, 문화적 상상이 가능한 공간이 될 것이라고. 이를테면 두 개의 건물 사이에 구름다리가 자리 잡고 있는데 ‘혼자 지나가기엔 넓고, 둘이 지나가기엔 좁은’ 다리라고 했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부딪히고, 마주치고, 만남이 유발되는 장소. 1층에는 카페가 있어 청소년들이 대학이나 사회로 밀려나기 전 자기 삶을 실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 되고, 2층은 다목적실이 하나 생기고 반대로 무목적실인 온돌방이 생길 것이라고. 강명숙 사무국장님은 이 공간에서 모든 것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마을배움터가 하나의 아지트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마을배움터는 지원을 맡는 아지트고 이곳을 토대로 강북, 성북, 도봉 더 나아가 세상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이지만 여러 다른 세대를 아우르는 곳. 그 아우름을 통해 배움이 무엇이고, 지역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더 나아가 마을을 관통하는 여러 네트워크. ‘배움의 생태계’를 만드는 곳. 마을 배움의 사례를 실험하는 곳이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것을 통해 청소년이 자신이 사회적 존재인 민주 시민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마을과 자신 삶의 주체가 될 것이라고.
 
   추신
 
   북한산우이역. 언덕길을 올라가서, 골목을 따라 문득 왼쪽을 쳐다보면. 나는 두둥실 떠올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구름다리를 걸어 나갔다. 멀리서 보면 정면에서 오는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나무를 쳐다보고 있다. 마치 어떤 공간이냐고 물어보는 것처럼. 일층 카페에서는 사람들이 커피향에 둘러싸여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다목적실에서는 분주하게 어떤 연습이 이루어지고. 무목적실인 온돌방에는 널브러져 자는 몇 명의 아이들이 보인다.
   나는 다시 인터뷰 장소인 품의 사무실로 돌아와 있다. 강명숙 사무국장님은 동북권역마을배움터의 CI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주었다. CI에는 한 그루 나무에 기대어 책을 읽는 아이 그 밑의 그늘에서 졸고 있는 아이가 그려져 있다. 배움 앞에서는 모두가 아이고, 스스로 성장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배움이 되는 모습이라고. 그리고 나무는 마을배움터가 동북권역에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과 나무들이 모여 숲이라는 협력을 이루듯, 그들이 가진 협력의 모습을 담아놓은 것이라고.
   그 순간 나는 정희성 시인의 숲이라는 시를 떠올렸다. ‘숲에 가보니 나무들은/제가끔 서 있더군/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숲이었어//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낯선 그대와 만날 때/그대와 나는 왜/숲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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