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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을말하다. 열넷] 다시 처음으로 _ 양금석

글쓴이 : PUM 날짜 : 2014-01-28 (화) 17:18 조회 : 2116
다시 처음으로
 
 
 
80년대의 암울한 사회적 상황은 새로운 도전에 대하여 통제적이고 부정적이었다. 이념과 정쟁의 시대를 머리와 몸으로 저항하며 살다가 사회에 들여놓은 첫 발걸음의 기억은 처참함 그대로였다. 우리 사회 그 어디에도 나의 능력을 발현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조직도 없었고, 나에게 지원군이 되어줄 자본과도 거리가 멀었으며 정치권력과는 더더욱 그랬다. 졸업 후 2~3년간은 나에게 암흑기와도 같았다. 미래를, 희망을 시도해 볼 만한 단 한 줄의 실마리도 내게는 없다고 단언했던 시간들이었다.
 
 
종로의 뒷골목 어느 맥주집에서 나는 이준호의 소개로 심한기, 신석호와 첫 만남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그 날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두 가지의 공통점이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음악과 청소년이었다. 이 만남을 통해 나는 삶의 유일한 열정의 발현 창구를 만난 듯이 반갑고 행복했었다. 그 후 몇 번의 만남을 통해 그리고 서울청소년회관의 캠프에 지도자로 참여하면서 우리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청소년과 음악이라는 화두를 현실화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작업의 결과로 우리는 1992622, 우리는 품을 설립하게 되었다.
 
 
품 초기에 우리는 경제적인, 현실적인 것들은 크게 관심이 없었다. 다만 청소년들과 만나고 그들과 함께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위안이 되었고 행복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우리들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청소년들과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들은 품의 정체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고민하고 토론하였으며 건강한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공부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제도권 청소년활동이 갖고 있는 한계(이 한계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를 벗어나 우리만의 고유의 가치적 활동으로 확산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도 끊임없이 지속시켜 나갔었다.
 
 
우리들의 음악적 관심은 작곡과 공연으로, 청소년에 대한 관심은 새로운 프로그램의 개발과 추진으로 성장시켜 나갔었다. 청량리 분관(서울청소년회관)에서 중화동으로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우리들에게 청소년의 중요성만큼이나 우리들의 가치를 동의하는 청소년지도자들에 대한 교육과 훈련도 중요함을 깨닫게 되면서 사회복지 대학생 실습지도가 시작되었다. 실습교육을 받았던 실습생들 중에 많은 이들이 품의 활동가를 거쳐 갔거나 현재에도 상근활동가로 함께 하고 있다. 우리가 실습교육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청소년 활동가가 행복해야 그들이 만나는 청소년들도 행복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우리들은 실습생들에게 몰입된 과정을 통하여 전문성을 성장시키는 노력을 기울였고, 그것에 대한 화답으로 그들은 품의 일원으로 여전히 함께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끊임없이 토론하고 논쟁을 했던 화두는 우리가 청소년들의 삶과 생활 속에 동화되어 청소년과 우리들이 교육을 하고 교육을 받는 대상자와 피대상자가 아니라, 우리를 통하여 청소년들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내고 그들의 건강한 성장을 통하여 우리들 스스로가 긍정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사회 자본과 권력에 대한 대척점을 만드는 것이었다. 저항 혹은 거부라는 단어로 표현되기도 하였지만 당시 우리들의 생각은 자본과 권력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들의 순수성이 훼손된다는 논리가 지배적이었다. 우리가 하나의 구조에 예속되면 우리들 또한 유연한 창의와 역량이 통제될 수 있다는 것이었고, 뿐만 아니라 예속된 사고 속에서는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의 사고의 유연성마저 통제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들의 판단이었다.
 
 
세 번째는 청소년들과의 만남의 지속성을 만드는 일이었다. 일회적, 단일적 프로그램으로는 청소년들과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그럼에도 일회적 캠프를 통해 품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게 된 청소년들이 있었다는 것은 품이 프로그램에 대한 집중력과 몰입의 결과라 생각한다.) 사후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이 세 가지 화두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품 속에 있지는 않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품의 초기에 함께 했던 정신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이제는 더욱 큰 틀에서의 협력을 통해 긍정적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20, 20년의 역사와 흔적들 그리고 성과들을 정리하고 평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또한 품 20년을 맞이하면서 다음의 10, 20년을 준비하고 계획하는 품이 되길 기대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품이 출발할 때의 정신과 가치가 실현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품은 나에게 있어서 사회에 대한 새로운 도전의 과정이자 젊은 시절의 열정을 발현할 수 있었던 유일한 통로이자 공동체였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몸은 품에서 떠나 있었지만 지금도 품에서 느끼고 공유했던 가치들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자문을 하고 있다.
 
 
지난 오랜 시간 동안 홀로 고군분투했을 나의 친구 심한기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의 마음을 함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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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금석
별명 '쐐돌이'. 대학시절부터 민주판, 굿판에서 꽹가리를 치고 혁명을 외쳤고, 5분안에 노래 한곡을 써대는 무시 못 할 작곡실력을 가지고 있다. 심한기와 이준호가 가지지 못했던 차분함과 냉철함이 있었기에 품 초대 소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품을 떠난 후에도 사회복지, 청소년복지 영역에서 자신의 철학과 실천들을 지켜가고 있다. 10년만에 해후했으나 여전히 그는 품의 근거이며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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