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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을말하다. 열셋] 품,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글쓴이 : PUM 날짜 : 2014-01-28 (화) 17:07 조회 : 2150
품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리가 되길-
 
 
 
품의 시작을 회고하며
 
세계적인 동기부여 전문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만화예술가. ‘행복을 그리는 철학자라 불리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앤드류 매투스는 이렇게 말했다.
 
 
'행복의 비밀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나에게 20대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몸부림 그 자체였다. 서울청소년회관 청량리 분관은 유창식, 김종국, 진종호, 심한기, 양금석, 신석호, 박판기를 연결해 준 곳이다김종국 형의 소개로 심한기를 만났고 그를 통해 내 자신이 부족했던 음악에 대한 고민과 청소년 프로그램에 대한 기틀과 기법에 대해 배웠다. 나는 그에게 역사론과 인식론의 중요함을 이야기했다. 심한기는 그의 오랜 친구이자 음악 듀엣 신석호를 소개했다. 이준호는 양금석을 새로운 동지로 소개했다. 김종국 형의 소개로 청소년회관을 벗어나 좀 더 위대하고 세련된 마음의 고향, 이천 유네스코청년원을 만났다. 우린 뜻이 맞았고 매일 만났다. 매일 술 마시고 노래하고 토론했다. 함께 여행하고 함께 고민했다. 이 땅의 청소년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토론하고, 술 마셨다. 하지만 소비적 한계의 만남은 오래갈 수 없다. 먼저 함께 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기 시작했다.  '우리가 만나고 지향해야 할 청소년은 이해의 대상이나 가르침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아이들이 단지 천박한 소비문화의 맥없는 대상이 아닌 그들의 문화를 스스로 만들고 즐길 줄 아는 창조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대안을 찾아 줌이 마땅하다. 세상은 진정한 교육이 무엇임을 반성하고 일제 잔재의 구시대적 교육자와 잔존문화를 척결하자. 학교는 이미 학교임을 포기했고, 학교가 가야 할 길은 학교의 담을 스스로 허물어 구시대적 악습을 철폐하고 인간 본연 교육에 충실해야만 이 땅에 참교육을 뿌리내릴 수 있다' 인식을 공유하고 철학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우린 그 외에도 공통점이 많았다. 친구이자 청소년을 공부한 학도이자 아마추어 딴따라였다유네스코청년원 손춘석 교수님과 함께 청소년을 위한 전문 그룹 '노래품'1991년 탄생시켰다. 논산 대건고등학교 강석준 신부님과 청소년회관 김종국 형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아 1991115-64회에 걸쳐 대학로 충돌2’ 에서 노래품 첫 콘서트를 열었다. 5백명에 가까운 이들이 우리의 공연을 보았다. 우린 가능성을 보았다. 공연문화를 청소년 프로그램에 접목하는 시도를 했다1992년 정부는 청소년어울마당프로그램을 각 시군구 읍면 단위로 시행령을 내렸다. 어울마당은 우리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무대이자 생명줄이었다. 유네스코 손춘석 선생님의 소개로 이천군청 청소년계장님을 소개받았다. 이천군 전체 어울마당을 노래품에게 맡기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노래품은 전국을 누볐다. 각 학교를 돌면서 아이들 앞에서 노래 불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이천농업고등학교 공연이었다. 실내체육관이 없어 할 수 없이 뙤약볕 아래 운동장에서 공연 중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경운기에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열광했다. 당시만 해도 라이브 공연을 지방 소도시에서 본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우린 좀 더 체계적이고 독립적 지위에서 전문적으로 일할 수 있는 단체를 필요로 했다. 하지만 기존의 단체는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우린 모두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세상에 겁 없이 나타났다.
20년 전인 1992622일 청량리청소년회관 4평의 지하실 청년들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을 하며 내가 하는 일에 행복하고 싶었다.
 
 
 
위대한 거부
 
고 강대근 원장님께서 어느 날 손수 제본한 마르쿠제의 위대한 거부를 심한기에게 던져 주었다.
 
외설적인 것은 음모를 노출한 벌거벗은 여자의 사진이 아니라, 침략전쟁에서 받은 훈장으로 정장을 한 장군의 사진이다. 외설스러운 것은 히피의 의식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서 전쟁이 필요하다는 교회 성직자의 설교이다.’
 - 마르쿠제 위대한 거부 중 -
 
품을 만들어가면서 가장 열중한 것은 현장보다도 철학이었다. 우리가 하는 행동과 사고하는 데 필요한 매뉴얼과 철학이 절실했다. 우리는 그간, 미국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한 교수들에게 주입식 사회복지 교육을 받았다. 미국식 개인주의와 프로이드에 벗어난 국학(國學)을 바탕으로 한 대동(大同)개념의 토종 철학이 절실했다. 지금도 사족을 억누르고 기생충처럼 교육, 법조, 언론, 금융, 정치권 등 그 모든 세력 깊숙이 뿌리박은 일제 잔재와 전쟁 증후군은 단순히 의욕만 앞세워 행동하는 무식한 무리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들과 대항할 논리와 철학은 그 어떤 무기보다 강할 수 있다고 믿었다. 허나 처음부터 잘못 꿰어진 단추를 다시 꿰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지난 60년의 세월은 고통조차 익숙한 민중들에게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그렇게 힘들고 지칠 때 강대근 선생께서 후배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아픈 데가 어디인지?’의 실마리로 슬며시 던져 준 마르쿠제의 위대한 거부익숙한 것으로부터 탈출해야만 시작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위대한 거부! 무엇을 바꿔야 하고 무엇을 지켜야 할지 막막하고 갑갑한 시절의 지침서였던 것이다!
 
 
Let It Be!
 
20년이 지나 품을 만들었던 젊은이들은 모두 중년이 되고 아버지가 되었다. 근데 이놈의 아버지 노릇이 녹녹치 않다. 아니 더러워서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한두번이 아니다. 사춘기에 접어드니 얼굴 보기도 쉽지 않다. 요즘은 조그마한 잔소리에도 방문을 걸어 잠거 버린다. 한마디 한마디가 짜증과 투정이다. 어렵게 대화라도 할라 치면, 하지 마! 로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린다. 한마디로 냅둬유다!. 열이 받치고 울화가 치밀어 욕을 해대고 매도 들어 본다. 그럴수록 밀려오는 자괴감과 서운함이 서럽게 밀려온다. 아버지로서 아이를 가르치고 제대로 교육시켜 사회의 구성원으로 키워나가는 게 아버지 역할이라 착오를 했던 것이다. 아이는 부모가 조진다.’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품의 철학 중 하나가 개입과 간섭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지도자나 교사는 관찰자나 조력자 정도의 역할로도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해 나가는 아이들의 자정능력을 현장에서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이다자연自然은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사람도 자연이다. 사람도 스스로 충분히 그러함이다. 자연은 사람의 손길에 의해 상처받고 상처받은 만큼 인간에게 되돌려주는 순환 기능을 철저히 한다. 우주 질서 137억년 태양계의 45억년이란 억겁의 세월을 통해 자연의 기능을 만들어 냄이다. 그것이 질서이고 섭리이다. 냅둬유! 는 질서를 거스르는 외압에 대한 항거이자 외침이다. Let it be!는 도에 넘치는 개입과 간섭에 대한 시간을 통한 스스로 깨달음을 수호함이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건강하고 병충해 없는 농산물을 얻기 위해 인간은 농약과 비료를 개발했다. 땅은 황폐해지고 인간의 몸은 퇴행적으로 바뀌고 병약해졌다. 해서 지금은 수배에 달하는 돈을 지불하며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을 찾는다. 한번 비료와 농약 맛을 본 땅은 이미 그것들에 중독되어 더 많은 양의 비료와 농약을 찾는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땅을 그저, 내버려두면 된다. 인간의 손길을 최소화해 몇 년간 쉬게 해 줘라.
 
 
아이들과 땅이 다르지 않다. 부모와 사회는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비료와 농약을 남용하고 있다. 아이들은 대량 생산 시스템에, 인위적 과영양에 시달리고 있다. 숨조차 쉬지 못하고 신음 소리 한번 내지 못하며 오락과 욕에서 돌파구를 찾아 헤매고 있다. 품의 20년은 인간에게 짓밟힌 황무지에 유기농 농사를 짓기 위한 토양을 만들고자 했다. 그 토양 안에서 자연 그대로 싱그럽게 커가는 열매를 만들고자 했던 몸부림의 세월이다.
 
20년이 지난 품에는 유기농 농산물을 닮은 건강한 아이들이 득실득실하다.
 
 
 
가르침과 가리킴
 
일반적으로 가르침과 가리킴을 혼동하여 말할 때가 많다. ‘교사가 학생을 가르친다에서 가르친다를 교사가 학생을 가리킨다라고 잘못 표현한다. 가르침은 교.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지식이나 기술 따위를)깨닫거나 익히게 하다. 알도록 이르게 하다. 고치어 바로잡다란 타동사다가리킴은 지(가리킬지). 사전적 의미로 ‘(사람이나 나침판 따위가 무엇을)특별히 짚어 보이거나 알리다. 지칭하여 이르다란 타동사이다. 가르침과 가리킴 모두 대상이 있어야만 성립할 수 있다가르침은 가르침의 대상보다 내가 우월적 지위 또는 우월적 지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우월적 지위나 지식이 없을 경우, 대상이 가르치는 이를 깔보거나 하찮게 여긴다. 막말로 권위가 상실돼 못해먹는 경우가 생긴다.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선생님 해먹기 어렵다고 한다. 이는 대상이 가르치는 이를 깔보거나 하찮게 여긴다는 뜻이다. 왜 일까?
 
 
가리킴은 대상에게 방향을 알려준다. 손을 통하거나 말을 통하거나 내 행동을 통해 직접 안내해 주어야한다. 중국말로도 가리킴은 지향指向zhǐxiàng이라 한다. 지향은 상대에게 몸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가능하다. 수직보다는 수평적 개념이다. 교육적 용어로는 가르침이 표준어이다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함은 품의 정신은 가르침과 맞지 않다는 뜻이다. 가르침에는 상대방이 가르침의 대상으로, 내가 상대방보다 우월함이 깔려 있다. 품은 아이들보다 우월하지도 아이들을 가르침의 대상으로 보지도 않는다. 최소한 가르침의 우월적 지위는 공자, 맹자, 노자, 장자, 석가모니, 지저스 크라이스트 반열에 오른 분들 정도는 돼야 만이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있지 않나 싶다. 허나 가리킴은 아이들과 같은 눈높이로 보며 눈과 마음과 몸으로 실천이 가능하다. 아이들과 관계에서 가장 피해야 할 것이 권위와 수직적 구조 속의 압력과 억압이다. 수직적 구조에서는 높이 올라갈수록 낙하의 가속도가 더해 엄청난 데미지가 온다. 이는 엄청난 공포와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자기방어를 낳는다. 현재 청소년 폭력과 학교 문제는 학교와 교권이 아이들 눈과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이다.
 
 
품에는 늘 아이들이 들끓고 그들 스스로 즐기며 그들 스스로 세상을 만들어 간다. 늘 공간에 나오고 싶고 어울리고 싶고 무언가 만들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을 좋아하고 소통하길 좋아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을 거침없이 표현하길 좋아한다. 이들 세계에는 막힘은 사라지고 오로지 통함만이 있다. 품이 특별한 것은 높이 오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품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있으니 친구 같고 형 같고 누나 같다. 공포도 없고 자기방어도 없다. 아이들이 쳐다보기 좋은 곳에서 그들을 기다려주고 들어주고 가리켜 주는 곳이다.
 
세상에 가장 좋은 교육은 가르침이 아닌 삶으로 가리켜 줌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섬은 사람과 사람 사이 소통하고픈 마음의 공간이거나, 사람과 사람 사이 좁혀지지 않는 거리일 수 있다. 마음의 문을 닫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를 거부해 스스로 마음의 섬을 만든다. 그래서 정현종 시인은 그 섬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시인 스스로 배가 되고 다리가 되겠다함이다. 우린 끊임없이 소통을 이야기한다. 소통疏通shūtōng은 대상이 있어야 가능해진다. 소통은 홀로 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래서 쉽지 않다. 교류交流jiāoliú나 담화談話tán/huà는 가능해도 소통은 서로가 잘 통해야 가능한 Two-Way Communication이다소통이 되지 않음은 오고 가는 길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그러기에 아예 가지 않음이다. 지위가 높은 곳에 있거나 재물이 지나치게 많으면 소통이 불가하다. 이들의 특성은 굳이 갈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가지 못하니 옴이 없다. 특성상 권력과 자본가는 소통하기가 불가하다. 그래서 그들은 담화문을 좋아한다.
 
 
품의 20년은 소통하기에 좋은 장을 만들기 위한 몸부림의 역사이자, 지키고자 감내한 처절함의 역사이다. 올라가기 힘든 높은 곳을 만들지도, 감당하지 못할 자본을 쫒지도 않은 결과이다품의 20년은 사람과 사람의 역사이다. 수많은 섬들이 품을 거쳐 갔고 그 섬에 머물며 혼신의 땀을 일군 역사이다. 지금도 품은 12시가 넘은 시간에도 불이 켜져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을 만들지 않기 위해 피똥 싼다. 품이 지치지 않길 원한다. 때론 쉼이 필요하다. 지금 품에는 강명숙, 유현희, 이상섭, 정이가령, 이지성이 있다. 섬과 섬 사이를 오가며 때론 배가 되고 때론 다리가 되어 홀로 외로운 섬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움직인다. 사랑하고 고마운 마음뿐이다. 은 이제 심한기, 이준호, 양금석의 품이 아니다. 이미 저들에게 공간을 내어 주고 그대들의 섬에 마실이나 다닐 수 있음을 즐거워한다. 3040년 후의 품은 그대들의 품이요, 아이들이 주인 되는 품이다.
 
역사 속에서나마 그대들의 품에 안겨 배 띄울 생각하니 회한悔恨huǐhèn이 없다.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심한기가 히말라야를 다니면서 스스로 무당임을 자처한다. 무당은 신과 인간의 매개자이다. 무당은 자연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다리이다. 다리는 오고감을 달가워하는 소통이다. 심한기는 스스로 소통하는 인간이 되고자 주문을 외운다. 5일 심한기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품을 만든 주역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유창식, 진종호, 양종수, 양금석, 이준호, 신석호, 심한기, 박판기, 최찬욱 9명이 12년 만에 한자리에 모여 화해와 용서의 장을 만들었다. 가장 가까운 섬들이 자주 보지 못함에 대한 화해의 자리였다. 품의 20년은 화해와 용서의 자리이다. 품을 통해 사랑을 느낀 이가 있다면 품에게 상처 받고 미움이 된 이도 있기 마련이다. 품의 태동을 일으킨 이들조차 12년 만에 조우하는 것은 품의 정신과 맞지 않다. 허나 12년 만의 조우도 그리움과 기다림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어제 만나고 오늘 또 만난 사람들처럼 우리는 서로를 그리워했고 그리움에 술잔 비워감에 즐거워했다. 심한기 스스로 품 20년의 의미에 다리가 되어 주었다.
 
 
1992622일 품의 태동을 만든 이들은 2012622일을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금은 가는 길이 다르고 자리가 달리 있어도 함께 한 그 시절은 인생의 가장 중심 한 곳에 자리 잡혀 철학이 되고 역사가 되어 흔들림 없이 뿌리 내리고 있었음을 고해한다. 지막으로 유창식 형이 술만 마시면 읊조리는 신경림 시인의 시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다리

                              신경림

다리가 되는 꿈을 꾸는 날이 있다
스스로 다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내 등을 타고 어깨를 밟고
강을 건너는 꿈을 꾸는 날이 있다
꿈속에서 나는 늘 서럽다
왜 스스로는 강을 건너지 못하고
남만 건네주는 것일까
깨고 나면 나는 더 억울해 지지만

이윽고 꿈에서나마 선선히
다리가 되어주지 못한 일이 서글퍼진다
 
 
 
 
 
 
이준호.jpg
  
 
이준호(품 창단멤버)  
품 창단멤버이다. 한 손엔 막걸리 다른 한 손엔 금서를 들고 그 큰얼굴에 핏대를 세우며 민주와 통일을 외쳐대던 시절 품을 만들었다. 품 초창기부터 땅과 놀이, 참교육, 씌여지지 않은 역사를 강조하며 품의 정신적 근거들을 다지게 했다. 품을 떠나 개인사업을 하며 품의 든듢나 아버지로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7년째 '조금만 기다려라!'를 외치며 또 다른 꿈을 꾸는 이준호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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