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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을말하다. 아홉] 네팔에 '변화의 시나리오'를 쓴다. _ 이선재 (ODA Watch 실행위원, AVAN 코디네이터)

글쓴이 : PUM 날짜 : 2014-01-24 (금) 20:58 조회 : 2052
네팔에 변화의 시나리오를 쓴다.
 
 
 
품에서 연락이 왔다. 올해 20년이 되었고 기념책자를 발간하는데, 나한테도 글을 써달라고 한다. 그런데 제목이 무척 어렵다. ‘대안적 엔지오 활동의 문을 두드리다
 
 
이 제목을 보면 지금 품이 네팔에서 하고 있는 활동을 스스로 대안적엔지오활동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문이 생긴다. 왜 대안적이라고 했을까? 지금 품의 활동과는 다른 뭔가 새로운 방향과 내용을 찾고 싶다는 것인지? 아니면 네팔이라는 외국의 활동 자체가 이미 한국에서는 대안적이라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네팔에서 다른 단체들이 하는 방식과는 다른 접근을 하겠다는 의미인지?
 
 
엔지오활동을 강조했을까? 한국에서 먼 나라인 네팔에서 뭔가를 한다면 우리단체를 중심으로 생각하기에 앞서 그곳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20년 기념책자에 실릴 예정인 여러 글이 마을의 문을 두드리다, 사람의 문을 두드리다. 교육의 문을 두드리다....” 이런 류의 제목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뭔가 다르다. 그렇다면 품은 네팔에 가서 어떤문을 두드리고 있을까?
 
 
나는 왜 품이 네팔 활동을 시작했는지 잘 모른다. 어느 날 품의 대표인 심한기선생이 히말라야의 무당이 되었다는, 아니 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게 계기가 되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그렇다면 괜히 선무당이 되어 사람 잡겠다고 네팔의 청년과 마을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의 문을 두드리려고 하는데 그게 참 어려운가 보다... 하하
 
 
품의 네팔 활동에 대해 간간히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품의 활동지에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곳의 활동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우수명의 네팔 품의 국제 지역사회복지 실천 사례 연구 - 베시마을의 행복한 마을만들기를 중심으로를 읽었다. 그리고 심선생이 출판을 준비하고 있는 자신의 원고를 보내줘서 그것도 같이 읽었다.
 
 
우수명의 논문과 심선생의 글에 이미 지난 8년간의 네팔 활동이 아주 자세히 나와 있고, 그 동안의 어려움, 실패, 그리고 새로운 도전이 상세히 설명되어 나와 있다. 다 알고 있으면서 도대체 나한테 무슨 이야기를 하라는 거야?
 
 
나한테 이 글을 부탁한 것은 내가 유네스코한국위원회라는 곳에서 오래 일했으니 국제 활동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보다도 내가 10년이 넘도록 라오스의 푸딘댕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변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변화의 시나리오는 아름다운재단이 하고 있는 풀뿌리, NGO 지원사업의 이름이다. 품의 네팔 프로그램과 아반(AVAN)의 라오스 프로그램이 2008년부터 3년간 이 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네팔과 라오스에서 지역사회의 변화를 만들고 있다고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는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동지이고, 남들이 하지 않았던 일을 하는 개척자이기도 하다.
참고로 라오스 푸딘댕 프로그램은 이제 12년차를 맞고 있다. 그 동안 푸딘댕에서 일어났던 일을 한마디로 설명하면, “11년 전에 만났던 꼬맹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청년이 되고, 청소년센터의 직원이 돼서 스스로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국제개발협력, 해외원조, 국제자원활동이 한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제는 청소년단체, 수련관, 사회복지 기관들도 개발도상국에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돕고, 그 일을 위해 한국의 청소년들을 보낸다고 아우성을 친다. 그렇지만 이러한 일이 단체나 기관 내부의 충분한 토론과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부의 요청이나, 분위기에 편승해서 시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주 비판적으로 보면, 국제활동, 국제자원활동, 국제개발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우리도 일단 하고 보자는 식이다.
 
 
이런 점에서, 품은 유행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일을 벌이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 분야에서는 자연스럽게 품의 활동이 사례가 되고 있다. 품의 활동이 성공 사례든 실패 사례든 모두 품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8년 간의 품의 네팔 프로그램에 대해 이미 품 내외부의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새삼스럽게 무엇인가 덧붙이기도 망설여진다. 현장을 잘 모르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 전, 품이 네팔 프로그램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라오스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누었던 이야기를 상기해보는 것으로 대신하려고 한다. 품이 네팔에서 했던 좋은 활동들은 이미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주로 의문이 나는 것들을 적어본다. 이 이야기들은 국제 활동을 하려는 다른 단체들에게도 유용할 것이다.
 
 
내가 가장 강조한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작하고, 한번 시작하면 오랫동안 할 거라고 생각해라였다. 품의 식구들이 지금도 꾸준히 네팔을 오가는 것을 보면 이것은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앞으로도 10, 20년은 더 하지 않을까?
 
 
두 번째는 네팔과 한국이 동등해야 한다.”였다. 한국이 좀 더 잘 산다고 그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무조건 돕는다는 시혜적 관점으로 일을 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품이 지역에서 청소년들과 친구로서 평등하게 만나고 있었기 때문에 네팔에서도 사람들을 만나면 그렇게 할 거라고 생각해서 이 부분은 걱정하지 않았다.
 
 
세 번째는 지역 중심으로 일을 해라였다. 이것도 쉽게 할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품이 서울의 변두리에 자리를 잡고 그 지역의 청소년들과 의미 있는 활동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연히 네팔에서도 어느 작은 동네에 들어가서 활동할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시내에 사무실을 먼저 만들었다고 한다. 라오스에서는 활동을 시작한지 7년이 지나서야 사무실이 생겼다.
 
 
네 번째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지역사회의 사람을 키워라였다. 역시 품이 한국에서 하고 있는 일이다. 품이 돈도 없고, 사람도 많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천천히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내 예상보다 빠르게 이루어진 것이 있다. 네팔 청년의 한국초청이다. 네팔 청년을 한국에 초청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고, 외부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았을 것이다. 라오스는 8년이 지나서야, 라오 청년을 한국에 초청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상한 나라한국에 오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어떻게 공평하게 사람을 뽑을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질시하지 않을까? 한국에 와서 빨리빨리만 배우고 가지 않을까? 괜히 헛바람만 드는 것은 아닐까? 이런 문제들을 생각하고 대비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섯째는 한국 것으로 채우지 말고, 공간을 남겨두어야 한다.”였다. 빈 공간이 있어야만 네팔의 문화, 가치, 지혜, 사람이 그 곳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품이 활동 초기에 했던 문화교류 프로그램이 시혜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의 좋은 것, 잘하는 것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
 
 
규모가 작은 품이 이렇게 네팔에서 지속적으로 활동을 하는 것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다. 해외 활동은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그 활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품이 작은 조직이라는 것은 단점도 있지만 좋은 점도 있다. 예를 들면, 품은 초기 활동을 평가하여 활동 거점을 도시에서 시골로 옮겼다. 그리고 베시 마을에 집중해서 마을 만들기라는 변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이 정도면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는 훌륭한 일이다. 과오와 실패를 빨리 깨닫고 바로 제대로 된 길로 방향을 바꿨으니까. 정부나 단체들은 이런 반성을 잘 하지 않는다.
 
 
국제활동, 국제협력은 국내와 별개의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의 활동이 그대로 연장되는 것일 뿐이다. 내가, 우리가 해외로 가고 싶다면 바로 여기에서 우리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바라보고 시작해야 한다. 청소년을 사업 대상으로 보았다면 그 나라에 가서도 그렇게 할 것이고, 여기서도 사진찍기에 관심이 많았다면 거기에서도 그렇게 해서 자기 사업 홍보만 열심히 할 것이다.
 
 
우리가 품의 사례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품과 같이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오랫동안 활동했던 단체도 국제 활동에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그 일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역의 변화를 만들기 위해 지금도 변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품의 노력과, 좋은 사례를 보여주는 용기와 도전에 박수를 보내고, 품의 20주년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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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재
(ODA Watch 실행위원, AVAN(Asian Volunteer Action Network) 코디네이터)
유네스코위원회에서 못을 박을것 같았었지만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고 '자유로운 털보'로 퇴직을 했다. 라오스 푸딘뎅의 귀신이 되기 전부터 '털보의 까칠함은 전 지구적으로 유명하다.' 라고 말하고 싶다. 수동적 자원봉사자가 아닌 상호적 자원활동가라고 하는 국제활동의 뼈있는 개념을 전도했다. 품과의 인연은 짧지 않지만 여전히 살갑지는 않다. 그래도 털보 이선재의 사유와 실천철학은 품이 배우고 따라야 할 모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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