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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을말하다. 여덟] 대안 교육의 길을 모색하는 품에게 _ 이치열(대안교육연대)

글쓴이 : PUM 날짜 : 2014-01-24 (금) 20:50 조회 : 2080
교육의 문을 두드리다
- 대안교육의 길을 모색하는 에게
 
 
 
20년은 우리 사회 교육적 상상력의 풍성함에 크게 기여한 역사라고 봅니다. 제가 처음 과 인연을 맺은 건 2011년 봄 세 개<우리는 인문학교다>라는 묵직하고 두툼한 책의 표지에 들어갈 코멘트를 좀 써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부터입니다. 교육 판에서 구르는지라 소문을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잘은 알지 못했던 에 대해 짧은 코멘트 몇 줄을 쓰다가 악연(?)이 시작된 셈이죠. 제가 썼던 코멘트를 다시 꺼내 소개해 봅니다.
 
 
2011년 대한민국 청소년,
미래 내 삶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비루한 일상...
뭔가 탈출을 기도할 비상구가 필요하다.
가끔 반항하고 객기도 부려 보지만 두려움의 구심력이 또다시 작동한다.
여전히 근거도 없는 두려움의 매트릭스에 갇혀 있다.
이 사실을 아예 모르거나 혹은 알면서도 속수무책이거나...
여기에 무모하리만치 용감한 인문학 전사들이 있다.
자기를 똑바로 바라보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내적인 힘,
타자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정신적인 힘,
이 기만의 매트릭스를 깨고 나갈 수 있는 통찰의 빨간약
그들은 인문학에서 찾았다.
그것도 고루한 골방의 텍스트가 아닌 일상의 시공간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때로는 생각지도 못했던 카운터펀치를 맞고 그로기상태에서 헤매기도 했지만,
They did it!
손바닥 부르트도록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_ <우리는 인문학이다> 표지 글
 
 
작년부터 시작된 무늬만학교라는 이름은 재미있기도 하고,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무엇을 하고자 하는 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안교육운동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화두가 바로 이 근대 학교제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하는 점이거든요. 미셀 푸코는 위계적 감시시스템인 파놉티콘(Panopticon)을 말하면서 군대, 감옥, 병원, 학교 등도 같은 규범적 원리에 의해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지요. 이러한 근대 학교교육에는 근본적으로 비판보다는 순종이, 협력보다는 경쟁이, 창의보다는 몰개성이, 자유보다는 억압의 원리가 관철되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근대 학교제도를 넘어서 누구든 자유롭게 배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대안교육이 꿈꾸는 교육의 모습입니다. ‘학교라는 이름을 쓰되 전혀 학교스럽지 않은 자유로운 배움터. 이것이 무늬만학교가 추구하는 교육의 모습일 겁니다. 형식적인 측면의 학교 틀뿐만 아니라 내용적인 측면에 있어서의 가치지향에 있어서도 말입니다.
 
 
현재 주말학교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무늬만학교가 좀 더 일상적인 교육과정의 영역을 넓혀가는 방향의 고민을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차제에 먼저 대안교육에 발을 담그고 있는 입장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몇 가지 제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주체 역량을 객관화해 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무늬만학교는 문화, 인문학, 여행과 국제연대 등의 영역에서 좋은 경험을 가지고 있지요.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우리 마을에서 가지고 있는 교육역량과 중첩되지는 않는지, 혹은 비어있어서 요청되고 있는 영역이 무엇인지 등에 관해 살펴보는 작업을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해 보시길 권합니다. 가령 삼각산 재미난 중등과정에서 잘하고 있는 영역을 굳이 할 필요는 없겠지요.
 
 
둘째로, 사이 배움터로서의 정체성을 지향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제도교육과 대안교육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친구들,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에서 진로문제를 놓고 헤매고 있는 친구들, 청소년과 청년 사이에서 진로와 삶의 문제를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는 배움터를 구상해 볼 수 있겠지요. 제도교육의 ‘6-3-3-4학제의 관성으로부터 자유롭게, 필요에 따라서 6개월짜리부터 1년 혹은 2년 코스 등으로 다양한 교육과정을 구성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셋째로, 지역사회의 소외된 친구들과 함께하는 자립교육공동체였으면 합니다. 그동안의 활동도 주로 소외 청소년들과 함께해 왔고 앞으로도 그 정체성에 변함이 없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어려운 얘기이긴 합니다만 경제적으로도 자립하는 교육공동체였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의 자립의 의미는 자본으로부터의 자립을 포함하는 얘깁니다. 특정한 재벌기업 등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공공적인 지원을 만들어 간다든지, 지역주민의 후원을 폭넓게 조직한다든지, 배움터 자체의 노동을 통한 경제적 자립도를 지속적으로 높여나가기 위한 기획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백이 있는 마을 수준의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실천해 봤으면 합니다. 지역은 삶의 터전이자 세상으로 통하는 창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고, 자고, 영위하는 지역의 일상이 구체적인 교육과정으로 들어와 주어야 합니다. 구태여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될, 혹은 지역의 구체적인 실재를 간과하고 추상적인 교육과정을 수행하는 시행착오를 처음부터 줄여나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의욕이 넘친 나머지 너무 촘촘한 교육과정을 짜고서 거기에 발목이 잡히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했으면 합니다. 유연함과 여백이 있어서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도록 열려있고, 상황마다 시행착오를 수정 보완해 나가도록 처음부터 원칙을 세워갔으면 합니다.
 
 
글을 써놓고 보니 못 다한 얘기들이 너무 많네요. 기회 있을 때마다 의견을 나눴으면 합니다. 암튼 20년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새로운 10년의 비전을 만들어 가는 의 발걸음에 경의와 찬사를 보냅니다. 아무쪼록 우리사회 교육과 지역을 살리는 길에 든든한 마중물 역할이 되는 이 되길 기원합니다.
 
 
 
 
 
 
 
이치열.jpg
 
이치열 (대안교육연대)
대안교육연대에서 땀흘리고 있다. 대단히 명쾌하며 대단히 지혜로운 교육운동가이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는 방법보다는 가치있는 과정을 만들어가는 것으로부터 명쾌하며 지혜롭다. 품과의 만남은 짧지만 교육의 가치를 대하는 태도는 상호적 아바타이다. 품이 꿈꾸고 있는 대안적 대안학교의 소중한 멘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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