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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을말하다. 일곱] 품이 만든 교육의 오래된 새길(김영삼_ 서울시교육청 장학사)

글쓴이 : PUM 날짜 : 2014-01-24 (금) 20:40 조회 : 2001
품이 만든  교육의 오래된 새길...
 
 
 
공교육? 거창하고 무겁다. 국가가 관여하는 혹은 국가에게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청소년기에 누구나 제공받는 교육? 사교육과 대비되면 뭔가 그 의미가 좀 더 분명해지는 것 같긴 한데...... 근데 좀 엉뚱하게 묻자. 품에서도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공교육이여 사교육이여??
 
 
우리는 왜 교육을 하는 것일까? 답이 너무 다양할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물어보자. 교육을 통해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성장과 성숙에 대한 기대, 삶에 대한 통찰력이 깊어지는 것,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그렇다. 변화 가능성에 대한 기대, 변화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 교육이라는 것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람들이 작든 크든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소망들이다. 그런데 청소년기의 특징 때문일까 나의 무능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학교교육의 한계 때문일까? 지난 20여년의 교사 생활 동안 나의 이러한 기대에 부응 할 수 있는 장면을 목격하거나 직접 경험한 것은 불과 몇 번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우호 선린의 따뜻한 관계 맺기는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변화의 기대를 충족시킬 만한 상황으로 진전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러니 이것이 늘 고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품과 심한기를 만. 사실 품만 만난 것이 아니었고 여러 사람들을 만났고 이야기를 나눴고 함께 공감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방안을 논의했다. 이야기가 나눠지기도 했고 모아지기도 했지만 분명한 몇 가지는 함께 동의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 자기 스스로 고민하고 실행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줘야 하고 어른들이 만든 경쟁의 사다리를 걷어차야 한다는 것. 그런데 이게 막상 실천하려고 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또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등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말의 성찬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적 실천이든 혹은 정책적 시도이든 말을 따라갈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여 흐지부지 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품은 지향과 가치를 붙들고 이를 현실화시키는 어처구니없는 뚝심을 보여주었고 길 없는 곳에 길을 만드는 경이로움을 선사하였다.
 
 
품이 10여년간 이끌어 왔던 서울시 청소년 연극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입상 경쟁을 통한 동기 부여 없이 그저 자신들이 만든 연극을 공연할 수 있는 장을 펼쳐주면서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모습은 지지와 지원이 최고의 교육이고 경쟁은 그저 목표와 하는 것이지 주변 친구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현실에서 구현해 준 아름다운 실천이었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에서 동아리 한마당을 고민하면서 품의 이러한 성과와 접근을 자기 것으로 하고자하는 것만 봐도 품의 고민과 실천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더 발칙한 것은 10대와 마을 만들기를 하겠다고 덤빈 것이었다. 학교가 아닌 곳에서 10대들과 뭔가를 도모한다? 그것도 동네(마을)에서 어떻게 하겠다고? 10년여년 전에 이런 발칙한 생각과 기획, 실천을 도모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 10대는 학생에 불과하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은 그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모든 것들을 포기하거나 자기 생활을 유보하도록 강요받는 것이 너무 당연한 시간들로 동네에 나와 놀 시간이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실 이 부분은 지금까지도 여전한 현실이다. 그래서 10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제공해주려는 노력에 집중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청소년들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말을 달고 살지만 막상 가정에서의 내 아이, 학교에서의 우리 아이들에게는 약간의 규격화된 자기 발언 혹은 제한된 실천의 여지만 주어질 뿐 모든 것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대로 움직일 뿐이다. 이 과정에서나마 일정한 의미를 찾을 기회를 가진 소수 아이들만 약간의 생동감을 가진 생활을 할 뿐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기 삶에 대한 무기력과 무관심으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10대들과 마을 만들기를 한다??? 사실 학생들과 뭔가를 하겠다고 기획하고 시도한 실천들은 계속 있어 왔다. 그러나 그러한 실천은 시도로서의 의미를 확인하고 일정 기간이 끝나면 한계와 전망에 대한 평가를 한 후 끝마쳐지곤 했다. 그런 실천조차 없는 것보다는 늘 의미 있는 주목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함께했던 학생들은 사업이 끝난 후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사업을 기획했던 사람들도 함께했던 학생들도 어쩌면 그 모습이 현재 우리 사회 청소년들의 삶의 조건이 갖는 한계 속에서 어쩌면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품에 가면 늘 만나게 되는 아이들이 있었다. 요놈들은 뭐지???
 
 
2010년 품이 사는 동네의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공간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사실 소식을 들으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아이들이 자기 공간을 갖겠다고 나서는 것이 아이들 스스로의 필요성과 동력을 가지고 한 것인지 심00 두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는지. 딱 여기까지였다. 품이 사는 동네 아이들에 대한 몰이해, 아니 사업에 동원된 아이들이 아니라 자기들이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는 아이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무시(무지),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도무지 그런 경험의 세계를 가져보지 못한 사람의 인식의 한계. 자기 공간이 아닌 곳은 곧 황폐화될 수밖에 없다. 만드는 것이 목적인 곳은 반드시 그렇다. 그러나 그곳은 아이들의 삶의 공간이었다. 학교를 비롯해 널려있는 많은 공간들이 있지만 그곳은 아이들의 삶의 공간이 아니다. 아이들을 위해 제공되었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그곳을 벗어나려고만 한다. 부끄럽지만 학교는 그런 공간이다. 그런데 정말 코딱지만한 지하 공간은 아이들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복닥거리는 삶의 공간이고 정말 많은 일들이 벌이는 가능성의 공간으로 에너지가 넘쳐난다. 아이들에게는 정말 독립된 공간이 필요했고 아이들은 또 하나의 날개를 달게 되었다.
 
 
아이들이 복닥거리는 공간은 그 자체로 요즘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소중한 것이지만 뭔가 좀 부족하다. 만일 아이들끼리만 소통하고 있다면 십대와 마을 만들기는 십대를 위한 혹은 십대들만을 위한 마을 만들기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품이 사는 마을에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기이하게 소통을 하고 있다. 수평적 소통에 목숨을 거는 청소년기를 지내고 있는 아이들이 어른들과의 수직적 소통도 너무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형 동생, 누나 언니로 자기들의 삶을 함께 살고 있을 뿐 아니라 동네 어른들과도 뭔가를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 재미있다. 그래서 정말 마을이라는 것이 실감나는 것이다. 뭐랄까 약간은 시기가 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것은 아이들의 당당한 모습 못지않게 함께 살아가는 어른들의 모습도 당당하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아이들이 당당한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성장을 하게 되면 그런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른들도 자기 삶에서 당당해질 수 있음을 품이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통해 우리는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로 국한하지 않더라도 교육은 늘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힘과 이웃과 더불어 사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다. 부끄럽지만 학교는 이 부분에서 철저히 실패하고 있다. 교육은 있으나 성장과 성숙은 없고 파편화된 개인의 무차별적인 경쟁은 있으나 협력하고 돕는 실천은 구호로써만 존재할 뿐이다. 사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은 청소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른들 역시 무차별 적인 승자독식의 경쟁에 내몰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삶을 겨우 견뎌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어른들이 사회적 구조를 바꾸어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녀가 소수의 승자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투자에 몰입하거나 자기 자녀가 좀 더 쉽게 승자가 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가지고 장난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구조적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학교는 아이들은 생명력 없는 창백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품에는 활기 넘치는 아이들이 있다. 잠시 특정 시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있다. 이건 또 뭔가?
 
 
갖가지 모습을 가졌지만 늘 유쾌하고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동네 아이들, 적어도 품이 사는 동네의 아이들은 몰라요’ ‘그냥요밖에는 할 말이 없는 것 같은 무기력한 아이들이 아니다. 이러한 생명력의 근원은 무엇일까? 학교 교육에 몸담고 있으면서 늘 허전하고 안타까운 몇 가지를 품은 20년의 활동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전부를 가지려 하는 학교 교육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전부를 가져야 충만한 것이 아니라 덜어낼 것은 덜어내고 집중할 수 있는 몇 가지를 충분히 경험할 때 비로소, 자기 모습을 갖춰 나간다. 품은 아이들에게 유보적으로 이것저것을 말하지 않는다. 분명한 자기 목소리에 충실하게 답하도록 안내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누군가 만들어준 현실이 아닌 자기 앞에 놓여있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현실을 직면한 아이들만이 성장과 성숙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충분히 존중받고 사랑받고 있다. 아이들을 존중한다는 것은 책임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랑 때문에 아이들이 멍들어 간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사랑이 아니라 자기가 생각하는 사랑을 일방적으로 퍼붓기 때문이다. 품은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성찰하게 하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요청하는 도움에 반응한다. 해결은 궁극적으로 자기가 해야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학교는 늘 준비된 답안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해결책까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대했던 요청이 오면 끝까지 책임져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갈등과 외면의 충돌이 나타나게 된다. 그런면에서 품은 책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함께 있어주는 것, 기다려 주는 것, 공감하고 격려해 주는 것, 그러나 해결의 주체는 바로 자신임을 분명히 밝히는 것....
 
 
품은 지난 10년 수많은 실패와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의 근본적 가치가 실현 가능한 것임을 동네에서 증명해 냈다. 성장과 성숙이 있는 유쾌하고 생기 넘치는 아이들의 삶, 동네 주민들과 아이들의 아름다운 간섭이 있는 소통, 이러한 모습이 아주 잠시 몇몇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님을 10년의 시간 속에서 보여 준 것이다. 품이 이렇게 해 냈으니 그럼 이제 모두가 할 수 있도록 하자?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음을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희망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속도에서 벗어나 가치와 지향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품이 있음을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마음의 안식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에게 품은 미래로 향하는 길일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현재일 수 있다. 또 누구에게는 과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사람 사는 세상의 근본적 고민은 다르지 않고 그 해결 방법 역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음을 주고 시간을 함께하고 손을 잡아주는 일이다. 품은 우리 교육에게 이 근본을 회복하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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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삼(서울시교육청 장학사)
이름으로는 오해될 수 있지만 세상이 이런 교사는 없다. 지금은 서울교육청 장학사로 일하고 있지만 그는 세상이 닮아봐야 할 진정한 교서로서의 아이콘이다. 함부로 가르치려 하지 않으며 타인과 다른 시선들을 존중하는 태도와 교육이 가야할 길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다. 김영삼의 삶 자체가 배움이며 에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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