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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을말하다. 여섯] 품 _ 김옥순(수원대학교 교수)

글쓴이 : PUM 날짜 : 2014-01-24 (금) 16:27 조회 : 2387
 
 
 
품의 20년을 돌아보는 원고를 청탁받았다. 근데 속이 편치 않다. 왠지 글이 써질 것 같지 않아 계속 미루다 드디어 독촉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작정하고 속이 편치 않은 이유부터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것은 마치 안락한 가정 배경을 가진 또래로부터 흠씬 두들겨 맞고 있는 쪽방촌 아이를 도와주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던 사람이 가지는 불편함인 듯 했다.
 
그리고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치열하지 못한 사람들이 가지는 불편함인 듯하기도 했다.
 
살다보면 인연이란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감지하게 되는 사건들과 만나게 된다. 1990년대 어느 여름 안동 하회마을의 한 숙소에서 다 마르지 않은 점토인형들을 보게 되었다. 숙소의 낮은 담 위에 한 줄로 늘어선 점토인형들을 본 순간이 내가 처음으로 품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 숙소에 오전까지 머물렀던 팀들이 품의 여름 캠프 팀이었다는 걸 나는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날 오후 같은 숙소에서 한국청소년문화연구소는 청소년영어캠프를 하기 위해 짐을 풀었다. 그리고 품과 한국청소년문화연구소에 근무하던 나의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아는 것도 없으면서 지식이라는 무기를 들고 겁 없이 강의했던 그 시절, 강연 장소 어디에선가 심한기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품과 나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래서 인연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내가 품을 위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 20주년 기념 인쇄물에 나의 글을 얹힌다는 것은 아무래도 내 속을 편치 않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원고 청탁서를 살펴보았다. 청소년 활동이라는 영역에서 품의 실천과 가치 그리고 가능성과 과제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쓰라는 주문이다. 나의 알량한 지식에 기초한 분석을 원하는 주문인데... 정직하게 말해서 나는 정말 아는 게 없고 지식은 더더욱 없다. 그래도 알량한 지식에 기초한 나의 글이 지금 품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동안의 방관이라는 빚을 조금이라도 청산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고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품은 정확하게 품 청소년문화공동체라는 공식 명칭을 지닌 단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품이 기획하고 실천한 청소년 활동은 청소년 문화 활동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문화 촉매 운동에 대한 글을 쓴 어거스탱 지라는 문화 활동의 목표는 특정한 부분문화들의 자기표현을 증진시키고 상호 소통매체들을 통해 그것들을 보다 보편적인 다른 부분문화들과 연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문화 활동이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며,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기회의 제공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어거스탱 지라의 이와 같은 주장을 분석의 틀로 하여 살펴보면 품은 부분문화에 대한 고민과 부분문화의 자기표현을 증진시키기 위해 참 많은 고민을 한 단체이다. 청소년 집단의 부분 문화, 도봉구 지역사회의 부분 문화, 그리고 대한민국의 여타 부분문화 등 등... 부분 문화의 자기표현을 증진시키는 데 있어 그 어떤 단체도 해 낼 수 없다고 느껴지는 대단한 일들을 참 많이 하였다.
 
그런데, 품의 활동 초기 나는 품의 활동이 부분 문화를 보다 보편적인 다른 부분 문화들과 연관시키는 활동에는 조금 소홀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하였다. 물론 최근 들어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날카로운 논의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보편적인 다른 부분 문화가 무엇을 의미하냐고 강력한 의문을 제기하며 따진다면 나는 할 말이 적다. 왜냐하면 나도 잘 모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분 문화의 특수성은 보편화된 몇 가지의 문화로 수렴되는 특성을 지닌다고 보는데, 품의 초기 활동은 부분 문화의 특수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보편문화를 향한 수렴과정에는 의도적으로 무관심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최근 들어 품의 활동은 변하고 있다. 강북의 청소년 집단을 벗어나 보다 다양한 집단과 넓은 지역으로 그들의 활동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으며, 네팔이라는 국가로까지 자신의 활동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20살이 가지고 있는 의미처럼...
 
과거의 품이 어린이처럼 동네 골목 놀이에 몰두하였다면, 성년이 되어가면서 품은 강북의 부분 문화와 청소년의 문화를 아동집단, 청년 집단, 그리고 다른 지역, 다른 국가의 문화와 소통함으로써 부분문화의 보편적 문화 수렴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품의 미래가 정말 많이 궁금해진다. 앞으로 어떤 변신을 꾀할 것인지. 아마도 20살이 되도록 품이 경험한 모든 것들은 이제 앞으로의 품이 나아갈 활동 방향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 보인다. 나의 경험과 품의 경험이 다를 것이기 때문에 내가 품의 활동방향은 이렇게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스러운 행동일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품에게 향후의 과제들을 제시함으로써 방향 설정에 영향을 미치고자 한다는 것은 더 더욱 오만스러운 행동이 될 것이다.
 
품은 타인의 방향설정 없이도 자신의 방향을 잘 잡고 나아갈 것이라 여겨진다. 다만 여성으로 치면 꽃다운 방년 20, 남자로 치면 약관 20세인 품은 이제부터 성인의 삶이 시작되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그저 한 가지의 당부만 하고자 한다. 성인의 삶이 시작된 품에게 나는 현장의 힘을 어떻게 학문의 힘과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당부하고 싶다. 현장의 힘을 학문의 힘과 연결시킨다 함은 넘쳐나는 젊은이의 힘을 반관(反觀)에 쓰지 않고 주경존심(主敬存心)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에 쓰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다산 정약용은 그의 두 아들에게 젊음이 가져오는 병으로 반관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반관이란 기존의 사고를 부정하는 시각으로 젊은 시절 자신도 반관의 병에 걸렸었음을 다음과 같이 실토한다.
 
젊은 마음으로 구속을 싫어하는 자들이 마침내 기거와 동작의 절도를 마음에 내키는 대로 한다. 나 또한 예전에 이 병에 깊이 걸렸었다. 늙어서 뼈마디가 어근버근해서, 비록 후회하나 고치기가 어렵다. 깊이 뉘우쳐 한탄할 뿐이다... 지난 번 너를 보니 단정 장중하고 엄숙한 기색을 조금도 볼 수가 없었다... 세상에 멋대로 말하고 어지러이 보면서 주경존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지난 20년 동안 품이 꿋꿋하게 지녀왔던 청소년문화에 대한 시각은 그 어떤 시각보다도 가장 진보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학계에서 청소년의 문화를 하위문화, 반문화, 실험문화 등등 다양하게 정의내리고 있을 때, 품은 현장에서 그저 묵묵히 청소년문화 그 자체를 인정하고 그 문화와 소통하려 노력했다. 다시 말해 품이 지난 20년간 기획하고 추진한 청소년 문화 활동은 청소년이 성인과 같은 문화가 아닌 것은 단순히 그들의 능력이 성인보다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 경험이 성인과 다르기 때문이라는 진보적 사고에 기초하였었다고 본다. 그리고 품은 이런 청소년들이 자신의 부분 문화를 가장 유익하게 생산해 낼 수 있도록 도와주려 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진보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진보적인 시각은 이제 학문적인 결실을 맺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나는 진보적 시각이란 반관을 통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반관의 자세는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본다. 그러나 반관의 자세가 학문적 결실을 맺지 못하고 하나의 습관으로만 자리 잡게 될 때 반관은 그저 잘난 척하는 건방이 된다. 반관은 타인에 대한 존경심을 지니고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될 때(主敬存心할 때) 그 힘이 발휘된다. 나는 품이 품의 주인 되는 길은 바로 자신의 경험을 학문으로 정리해 보는 길이 될 것이라 본다.
 
품이 20년을 지탱해온 것을 기적이라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운영도 빠듯한 품에게 학문적 결실을 요구하는 내가 야속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품이니까 나는 이 일을 해내리라 본다. 품의 치열했던 삶이 기적을 만들었고, 그 기적은 이제 또 다른 희망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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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순(수원대학교 교양교직과 교수)
수원대학교 교양교직과 교수이다. <한국청소년문화연구소>, <대통령청소년특별위원회> 등 현장 연구와 활동경험의 경험을 근거로 '아닌 건 아니다!'를 할 수 있는 당당함을 버리지 않고 있다. 품과의 인연은 깊다. 늘 뒤에서 받쳐주고, 때려 주고, 보듬어주는 엄마 같은 선배이며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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