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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을말하다. 넷] 앞으로도 질기게 아이들을 품을 거지? _ 안이영노(서울대공원장)

글쓴이 : PUM 날짜 : 2014-01-24 (금) 15:59 조회 : 2052
앞으로도 질기게 아이들을 품을거지?  
 
 
 
 
청소년 공동체 '' 심한기 대표(이하 무당)    자랑스러운 20년이야. 바라보는 느낌이 어때? 또 당부할 것은 뭐 있나?
 
'기분좋은QX' 안이영노 대표(이하 대뫙)    네 말대로 20대 청년 하나를 길러냈으니 대견하겠다. 키우느라 마음고생이 어련했겠니. 너랑 나랑 처음 만난 것도 띠가 한바퀴 돌았구나. 2000815일 내가 김종휘 등과 문화부 청소년문화축제 할 때 그 현장에서 봤으니 강산이 하나 변했어. 유스페스티벌(youth festival)이라고 부르던 그날 행사장에서 너 참 눈에 잘 들어왔다. 한 여름 땡볕에 체면 없는 반바지, 상인들이 찰 법한 허리쌕을 하고 긴 머리는 빛바랜 갈색염색인 심한기를 보았을 때, 이렇게 오랜 시간을 같이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진정한 현장 냄새는 났으나 좀 촌스러웠거든. 그래도 날라리가 날라리를 알아본다고, 그 후에 보면 뭔가 끌렸다. 청소년이나 문화에 대해서 쉽게 설득되지 않는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걸어와 줘서 참 고맙다. 품에 대한 느낌보다는 심한기에 대한 느낌인데, 덕담은 여기까지. 혹시 네가 청소년을 기를 때 꼰대처럼 가르치려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안 그러는 거 안다만, 너 예전에 대안교육 주장하면서 군대식 교육 했던 거 알지? 하하.
 
 
 
무당    우쒸, 가르치려 든다는 게 뭔데?
 
대뫙    어찌 보면 지금은 다 지난 이야기이다. 품은 공동체이지 회사가 아닌데 말야, 청소년들이나 직원들이나 운동가로 길러지는 과정에서 어깨가 무거웠을 것도 같았다. 청소년운동, 지역운동을 하면서 온갖 고생을 다 해온 존경스러운 선생님들, 선배님들의 말씀이니 큰 권위로 느끼는 것이고, 품에서 하는 캠프나 아카데미가 공익적인 가치를 지향하니 그 사명감에 부담스러웠을 것이야. 교육과정이 뭐랄까, 좋은 가치를 자꾸 집어넣으려는 것 같은 시절이 있었어. 특히 너나 나나 자신도 모르게 그런 것을 후배나 제자들에게 할지 모르니 말야.
 
 
 
무당    영노가 볼 때 지금의 품도 그러한가?
 
대뫙    물론 아니지. 용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충고를 잘 새겨서 들었으면 해. 품이 늘 자유롭게 열어놓는 것 같지만 사람들한테 주는 비전은 너무 분명한 게 탈 이였어. 다시 말하지만 품은 공동체이지 회사가 아니지 않은가. 디자인에서는 컨셉이 분명한 것이 좋지만, 부모가 자식을 기르고 스승이 제자를 기를 때에는 하나의 가치를 주장하면서 미래 자체를 왈가왈부 할 수 없다고 본다. 공부하고 살아가는 방법에서만 하나를 강조하고 약속을 지켜달라는 게 있을 뿐이지, 같은 결과를 요구하거나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되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게 좋은 어른들의 모습이기도 하고. 적어도 좋은 조직이나 대안적인 소통을 꿈꾼다는 단체는 그리 하지 않아야 할 거 같아.
 
 
 
무당    품에서 자란 청소년 청년들은 스스로 결단을 내리고 다양하게 자기 갈 길을 가잖아.
 
대뫙    품이 공동체이기도 하지만 학교이지 않나. 스스로 결단한 인생을 살도록 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그런 다양한 청소년들을 배출한 것이 품이 20년간 만든 결실 중에 가장 중요한 것 같아.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품은 학교다. 학교는 가르치려 드는 곳이 아니다. 좋은 학교는 권위가 없어 탈이어야 한다고 늘 우리는 얘기해 왔잖아. 품이 더 가르치려들지 않아도 아이들이 스스로 자란다는 것을 품 스스로 말해왔지만, 실제로 요즘 몇 년 들어서야 그것을 제대로 발견하고 체득한 것도 같다. 자각했으니 앞으로 잘 살아라.
 
 
 
무당    , 나한테 왜 이러니. 20주년인데, 불편한 말만 하고.
 
대뫙    사실을 내가 이런 따끔한 얘기 하는 거, 친구라서가 아니라 샘나서 그러는 거다. 너한테 하는 이 얘기는 회사를 하든 학교를 하든 나 역시 가지고 있는 숙제라서 그렇다. 기분좋은QX는 이제 9년이다. 마악 10살짜리 되는 아이 기르는 내가 볼 때, 20대를 길러낸 너와 품에게 조언을 구할 것도 많고, 따갑게 묻고 싶은 것 역시 그래서 많은가보다. 우리 회사 내부 뿐 아니라 에이스벤추라, 쥬스컴퍼니, 문화기획학교 등 용산에 모여 있는 회사, 단체들에서도 그렇다. 동료와 직원들, 후배들, 제자들 출신에게 해 주었던 얘기들을 지키려고 하지만 완벽하게 지키지 못한 허물이 아까 품에게 따갑게 얘기했던 바로 그것들일 게다. 가르치려 들지 않아도 알아서 크고, 믿어주면 일 잘 하고 그러는 게 공동체나 학교뿐만 아니다. 회사나 일하는 조직에서도 똑같다. 그런 것을 표방했지만 조직이란 늘 딱딱해지고, 아래에서 자발적으로 못 할까봐 위에서 아래로 가르치고 전달하는 곳이 되기 쉽다. 그걸 극복하는 대안기업을 만들려고 했어도, 다른 기업 하는 분들은 이런 생각이 이상적이라고 바라봤었다. 그럼 안에서라도 이상적으로 쭈욱 잘 했어야 하는데 말야. 용산에서 동료들이랑 이 생각을 밀고나갈 때 늘 잘 하지 못했거든. 한편으론 가르치려 들다 실패하고, 한편으로는 모자란다고 느껴 덜 믿어준 것도 같고, 어떨 때는 지나치게 하나의 비전을 강조하게도 되었다. 그래서 다시 너한테 이야기한다, 네가 말하고 주장한대로 아이들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알아서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해라. 20년이 다 된 품이 그리 실천한다고 알고 있다.
 
 
 
무당    영노가 말한 대로 품은 나가는 중.
 
대뫙    그렇다면 네가 없어도 품이 돌아간다는 것 알았으니 나와라. 너나 나나 나이가 들어 아무 말 안하고 사무실에 앉아만 있어도 권위가 풀풀 풍기는 '아자씨'인데, 이제 그만 약속대로 시어머니 자리에서 은퇴해버리지?
 
 
 
무당    ......... 이 새끼야, 다른 얘기하자.
 
대뫙    20, 기이이인 게 짧은 것 보다 좋다. 그건 진리다. 네가 지금 나 때리면서 덕담하라고 하니까 하나 더 할께.강해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아서 강하다.
 
 
 
무당    상투적이다.
 
대뫙     , 그럼 이건 어떤가. 지금은 ()쥬스컴퍼니를 운영하는 이한호 대표가 기분좋은QX를 함께 만들고 2년이 지나서였어. 11일에 나에게 메일을 하나 보냈는데, 거기에는 10년 갈 기업과 30년 한 세대를 갈 기업, 그리고 100년을 가는 기업이 다르다는 얘기가 담겨 있었지. 그는 당시 우리 회사 리더로서 조심스럽고 겸허한 판단을 내리고 있었던 것 같다. 100년을 갈 기업을 만들자고 함부로 얘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겨우 10년 갈 회사를 만들 뜻은 없다고 의지를 표명했다. 직원들과 어울려서 같이 30년 함께 성실하고 힘든 길을 가자고 했었지. 내가 품에게 바라는 건 그런 거다. 이한호대표가 보든 또 내가 보든 품은 30년 갈 곳이 아니다. 분수에 맞게 목표를 정해라. 너무 작은 꿈도, 너무 큰 꿈도 바라지 말라. 지금의 품은 50년 이상 두 세대를 가는 좋은 학교가 됐으면 좋겠다.
 
 
 
무당    우리한테 어떤 희망과 과제가 있을까?
 
대뫙    큰 재산과 큰 희망이 있다. 네가 청소년을 기르면서 함께 기른 후배가 품의 직원과 동료가 되어 지금 또 다른 청소년을 길러주는 것 말야. 너희가 길러낸 청소년이 다 커서 이제 다른 청소년을 기른다. 그간 품이 살아온 과정을 나보고 하나로 요약하라면 바로 그거다. 내가 품과 함께한 많은 경험들은 다 그런 모습을 볼 때였다. 네 성깔과 고집 때문에 직원들이 힘들어하고 너의 신념에 찬 영향력 있는 말 때문에 청소년들이 지나치게 스펀지처럼 하나의 비전을 흡수할 때는 걱정도 된다. 그러면서 '어찌 저리도 꼬라지가 나랑 똑같을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대를 이어 사람을 기른 것은 지금처럼 앞으로도 품의 가장 큰 재산인 동시에 유일한 과제 아닐까.
 
 
 
무당    앞으로 이렇게 해라, 뭐 이런 식으로 좀 구체적으로 말야, 더 멋있게 더 자세히 얘기 좀 해줘.
 
대뫙    자꾸 대담 중에 때리지 마라. 더 할 얘기가 없다. ....사람이 사람을 기르고 그 사람이 또 그 사람을 기르는 것을 우리는 가족이라고 부른다. 어려운 말로 이것을 세대라고 하지, 세대는 큰 무리로 발생한다, 번식한다는 의미이지만 명료히 말하자면 그건 가족이다. 가족이 생물학적으로 번식할 때 DNA 뿐만 아니라 좋은 비전도 번식되지.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비전은 하나가 복제되는 반면 새끼수가 늘어나는 것만큼 사명의 수는 제각각 여러 개로 늘어난다. 그게 내 생각이다. 비전은 하나야. 하지만 그 비전을 실현하려고 다양한 모습으로 가족들이 커버리고 가끔 딴 생각도 할 때가 있다. 가족이란 그것을 품는 곳이지. 품 말이야, . 가족이란 하나의 비전에 여러 생각을 나누는 곳이 되는데 그게 바로 가치이다. 가치는 비전이랑 달라. 비전이 평범해도 가치 있는 곳 있잖아, 살기 좋은 공동체 말야. 이쯤 얘기했으면 더 뭘 얘기하겠나. 3년 전, 너랑 나랑 문화기획학교의 윤성진 교장, 김승민 대표가 다 모여 대학로에서 문화기획학교 얘기할 때도 사람을 기른다는 게 우리 모두의 공통 비전, 하나의 비전이었다. 하는 활동과 사명은 제 각각이지만, 우리는 가족 비슷한 거 아닌가.
 
무당    , 멋진 말이다. 늘 그렇듯 다른 데에서 이거 써먹어도 되나.
 
대뫙    된다, 밥만 사주라. 사실 용산에서 내가 내 식구들이랑 나누는 비전도 똑같다. 품이나 우리 같은 곳들을 씨족사회라 부르든 부족사회라고 하든 그 장점이 번식력이어야만 한다. 많은 사람이 함께 하고, 각자 조금 다른 길을 가더라도 인정하고 공존하는데, 좋은 가치를 함께 자연스럽게 만들어가는 것 말야. 내가 그간 옆에서 바라본 품은 이미 그것을 잘 해 내는 20살이 되었고. 사람을 기르는 비전은 품처럼 용산에서도 똑같다. 기분좋은QX에도 품처럼 사람들이 신나서 들어왔고, 가슴 아프게 나갔었고, 그래도 모두 가족으로 남았고, 또 남은사람이 꿋꿋하게 끌고나가면서 10, 12년을 지나고 있다. 20년 넘어가는 품에게 존경을 표한다네.
 
 
 
무당    문화적인 측면에서 볼 때, 품이 한 일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대뫙    품이 하는 일이 문화예술계에도 큰 자극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품이라는 공동체가 지금까지 해온 일은 아주 역동적인 문화기획의 사례라고 말하고 싶다. 연극공연이나 교육캠프, 축제 같은 작품을 만드는 거 말고 작은 지역공동체를 잘 만들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을 한다. 정부가 주는 돈 받아서 건물을 운영하는 곳이 아니다. 청소년센터나 문화센터 같은 공공시설 운영하는 게 아니고 홍대 앞 예술가들처럼 저예산 독립운동 같은 일을 해서 좋았다. 한국의 문화기획 사례 중에 그런 게 많지 않다. 청소년축제는 청소년들이 관람자가 아니고, 또 참여자에만 머물 수도 없다. 직접 만드는 축제가 되어야 좋은 축제이다.. 이런 이상을 품과 10년 전에 나누었는데, 당시에도 품은 이미 강북구에서 추락이라는 청소년축제를 하였고, 청소년들이 직접 기획하고 지역 내에서 문제를 풀어가면서 운영하는 것뿐만 아니라 후배들을 가르쳐서 대를 물리게 했다. 당시에 내가 김종휘, 강원재, 황덕신, 이지선, 김영등 같은 동지들과 함께한 청소년문화축제는 청소년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획기적인 방법을 쓰기는 했지만, 청소년들이 대를 이어서 지금까지 살아남아 오지 못했잖아. 문화예술계는 이러한 활동이 좋은 문화라고 얘기를 해 왔었기 때문에 품의 활동이 큰 자극이 됐을 것이다. 10년 전에는 10살짜리 품이 막 자라서 떠드는 사춘기로 보였겠지만 지금의 품은 오히려 좋은 문화기획의 한국적인 사례 아닐까. 문화예술 영역에서 주도자도 아니었고 전문가도 아니었다고 품과 심한기는 느껴왔겠지만, 진보적인 문화예술에서는 아마 품이 주류 담론 안에 있었을 거야. 10대를 문화기획자로 기르고 청년들이 주도해서 직접 일하게 만들고, 전국구가 아니라 작은 지역에서 실무자들이 일하면서 크는 문화운동을 주장했으니 말야. 지금 같은 힘든 시기에 모두 정부가 주는 공공자금에 의존해서 일하는 문화예술계를 생각해보면, 문화운동가들은 세상에 드문 천연기념물이잖아. 잘했다. 수고했다.
 
 
 
무당    문화계에서 품이 어떤 존재일까. 참 이해받기 힘든 곳이었다는 생각도 든다만. 그런 점에서 하나만 더 칭찬해줘.
 
대뫙    심한기가 문화복지아카데미를 만들어 주욱 이끌어 온 것 역시 기억이 난다. 청소년지도사와 사회복지사들이 문화로 주민들의 복리를 증진해줄 수 있다고 본 것은 창조적인 시도라고 감히 평가하고 싶다. 사회복지사들 스스로 문화를 즐길 수 없다면 문화복지를 해낼 수 없다는 우리들의 발견 역시 참 좋았다. 사회복지사들이나 청소년지도사처럼 시설기관에 종사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 문화운동, 지역예술운동, 시민운동처럼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민간영역을 이해하는 다리 구실 하나가 생긴다는 점에서 특히 그랬다. 2005년 당시에 문화예술계에서는 어찌 보면 문화예술 진흥이나 예술가들의 육성을 주로 생각했는데, 문화예술이 주민들의 질적 생활개선이나 사회복지에 좋은 계기,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한 것은 문화계에서 볼 때는 작지만 좋은 시도였다.
 
 
 
무당    네가 품과 함께한 예전의 경험에서 해주고 싶은 얘기 없는지.
 
대뫙    12년 전에 청소년문화축제에서 처음 만나고 바로 의기투합했던 것이 청소년 문화기획아카데미였지, 아마. 내가 이희광이나 지금 문화로놀이짱 대표를 하고 있는 안연정과 함께 문화예술교육연구소 에이스벤추라 강사로 청소년문화교육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에이스벤추라의 주된 교육이 청소년을 창의적인 기획자로 기르자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 품이 만들어가는 청소년문화기r획아카데미에 기꺼이 참여할 수 있었다. 나는 당시에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든 문화기획학교에서 20대 성인들을 실무자로 기르는 예비기획자 과정을 하고 있었는데, 그 프로그램을 바로 청소년들에게 적용하여 교육하려니 힘든 게 많았다. 직업을 택하려는 사람과 달리, 청소년들에게는 문화기획자가 되는 과정이 전인적 교육이나 자기의 삶을 성찰하는 학습과정에 연결되어야 한다. 그걸 만들어나가는 과정이었으니 힘들 때이지. 홍익대 앞에서 게릴라들처럼 놀던 방식으로 청소년들이랑 아예 일을 벌이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 그리 하기도 했고. 하지만 청소년들을 특정한 이념이나 가치관 안에서 편협하게 기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청소년을 스스로 사업을 만들어내는 문화기획자로 기를 때 좋은 가치를 지향하도록 권고하는 것을 빼놓을 수는 없잖아. 그 때 품이 나타나 자극을 준 셈이다.
 
 
 
무당    어떤 자극이었는가.
 
대뫙    청소년들이 문화에 대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직접 문화기획자가 되어 프로젝트를 창조하도록 하는 게 우리들의 일이었는데, 품과 함께 청소년 문화기획 아카데미를 하면서 크게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던 부분에 대해 균형감각을 갖고 생각하게 되었어. 당시에 에이스벤추라는 청소년들이 이념에 따라서 행동하거나 외운 듯이 공익적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자기정립은 커녕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하게 성장할 우려가 있다고 보았던 것 같다. 오히려 현장의 전문가들처럼 일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절차를 가르쳐야 한다고 보았다. 청소년들이 어린 게 아니다. 그들도 충분히 조사하고 진지하게 전략을 짜고 이것을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교육받을 필요가 있다고 보았던 것이지. 품을 비롯하여 문화운동, 청소년교육 등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게 너무 딱딱하고 냉정해보인다고 했어. 아이들에게 굳이 이런 것을 미리 가르칠 필요가 있는가 생각했던 것이야. 품은 청소년들이 가치있는 삶을 추구하고 자기희생을 하면서 지역운동을 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강조했어, 상대적으로 말야. 나는 체계적으로 일하는 작업능력 뿐 아니라 자신들이 살아나갈 인생의 가치를 스스로 선택하고 또 새롭게 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대로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 문화기획자 청소년을 기르는 데 꼭 필요한 요소라는 걸 새삼 고민하게 되었어. 생각이 다른 두 집단이 함께 했다는 것, 그러면서 점차 같은 방향을 보게 되었다는 것은 좋은 거 같군.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무당    그 당시 우리 둘조차 서로 다른 것을 이해하고 또 그것을 즐기면서 친구가 되었던 거 아닐까.
 
대뫙    친구가 아니라 내가 형 같은데... 심한기가 했던 이야기 중 청소년이 지역의 코디네이터가 되어야 한다고 했던 게 특히 와 닿았다. 2004년 무렵이다. 청소년이 자신들에게 걸맞은 문화 활동을 하도록 기르는 게 아니라, 청소년들이 직접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청소년들이 학교축제를 잘 만들거나 청소년축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역축제를 만들어내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품 덕분이다. 서울 강북구에서 청소년들이 만든 <추락>은 청소년축제가 아니라 지역축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북구청이 크게 도와주지 않아도 주민들이 스스로, 그것도 청소년들이 주민의 한 구성원으로서 직접 만드는 것 말이야.
 
 
 
무당    영노에게는 내가 참으로 고마운 점 많은 친구이겠군.
 
대뫙    그렇다. 심한기가 좋은 멘토가 되어주어 에이스벤추라가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진 문화예술교육단체로 컸고 신촌 홍대 앞 청소년 문화존 사업을 하도록 도와주고 함께 고민한 것도 심한기이다. 특히 문화로 놀이짱이 청소년문화예술교육을 하다가 홍대 앞으로 건너가 지역운동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도 역시 품의 영향 아닐까 싶어.
 
 
 
무당    품에서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는지.
 
대뫙    다 사랑스럽지. 그런데 상섭이가 상징적인 존재 같아. 초창기 품 캠프에 참가했던 어린 친구가 다 커서 품 직원이 되어 다시 아이들을 길러냈고, 또 지금은 새롭게 자기세계를 펼쳐나가는 사람이 되었으니 말야. 품의 20년 무게감은 상섭이 불어난 몸집의 무게랄까. 기분좋은QX에서 2007년 당시 문화리더십센터를 만들었는데 정헌영 소장과 함께 잡았던 비전이 있었어. ‘리더를 기르는 센터가 아니라 ‘’리더를 기르는 리더를 걸러내는 센터를 만들자는 것이었어. 근데 사실 그건 품의 모습이야. 품의 미래도 그렇겠지. 지금 품의 인상은 10대 문화기획자들이 바글거리는 곳이야. 이들이 다 커서 어떤 멋진 일을 해내고 어떤 후배들을 길러낼까. 한국의 문화기획 현장 중에서도 품은 이른바 동네문화기획자들을 기르는 전형 같구나.
 
 
 
무당    끝내기 전에 나에 대해서 좋은 얘기 한마디 해줘.
 
대뫙     너 스스로 인문학 공부가 부족하다고 느끼니까 그 공부하려고 나이 45에 동네 청소년 셋 꼬셔서 세 개와 심한기의 인문학교 만들었잖아. 자기가 공부하고 싶을 때 해야 하고, 남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자기가 공부하다 보면 절로 함께 하는 사람들이 공부하게 되니까. 큰 개 한 마리가 강아지 세 마리랑 학교건물도 없이 동네 돌아다니면서 잘 살아가는 방법 탐구하는 것 말야, 그거 참 좋았다. 난 그때 심한기가 말로만 하던 것을 제대로 실천한다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나가는 교육의 본질, 실천하면서 배우는 인생의 본질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 면에서 앞서서 산을 오르는 심한기가 멋있고, 지금은 무늬만학교 같은 대안교육을 추구하면서 공교육도 포기하지 않아서 좋다.
 
 
 
무당     너도 정신 차리고 네팔 한번 와라.
 
대뫙     그냥 내가 있는 용산이라는 작은 우주에서 히말라야를 느끼고 있는 중이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네가 변해서 네팔 간 게 아니라 네팔에 가보면서 변하는 게 보이더라. 히말라야에서 자기를 발견한 심한기와, 네팔의 주민들 속에서 사랑을 품게 된 품이 계속 나아가는 것을 보고 싶다. 품의 지금 모습에 대해 끝으로 이거 당부하고 싶어. 열심히 사는 NGO단체는 보배야. 저예산으로 독립적으로 살고, 정부지원보다 회원들의 모금으로 운영되는 곳, 그게 진정한 인디문화다. 좋은 일 펼치면서 당당하게 기부 받을 수 있는 곳, 그거 놓치지 마라. 비록 언더문화로 남을지언정 그게 좋은 거다. 땅 위로 오르기보다 바로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 오르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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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이영노(서울대공원장)
현 <서울대공원장>, 전 <기분좋은 QX>대표이며 기분나쁜 문화기획자이다. 갑자기 허벅지를 읅어대며 '뜯어먹어 날!'을 노래하기도 한다. 순수와 불손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우주 속에 꽤 폭넓은 '수용의 가치'들을 담아내며 살고있다. 품이 지닌 고정의 틀을 허물 수 있는 단서를 던져 주었고 '기획자'라는 키워드를 찾게 해 준 장본인이다. 심한기와는 원수이며 친구이지만 다른 식구들에게는 매력적인 선배로 위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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