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게시물 14건, 최근 0 건
 

[품을 말하다. 하나] 품, 복지의 일상적 틀을 부수다 _ 이태수(꽃동네대학교 교수)

글쓴이 : PUM 날짜 : 2014-01-23 (목) 15:50 조회 : 2577
 
, 복지의  일상적 틀을 부수다


 
“Right is Right even if no one is doing it; Wrong is Wrong even if everyone is doing it. "
- 성 어거스틴(Saint Augustine)
 
 
이상(理想)이 필요한 시대다.
우리는 지금 이상을 버리길 강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현실에서 많은 이들이 추종하는 생각에서 멀어지면 곧바로 비현실적인 공허한 이상주의자로 가엽게 여겨진다. 현실은 냉혹한 것이기에, 꿈과 이상은 학교에 있을 때나 하나의 낭만으로 추구할 뿐이고 졸업을 할 때가 가까워지거나 군대를 갔다오면 지극히 자신의 이익에 충실한 길을 밟는 것이 의당 현실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세상이다. 학교 때까지 배웠던 윤리와 도덕은 무능한 인간이 자신을 합리화하는 허약한 방패이고, 자신의 이득과 출세를 위해서는 한치의 양보나 망설임도 없이 경쟁에서 승리하고 그 결과의 향유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는 배반적 진실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시대이다.
그리하여 청소년들의 아노미현상은 길고 더 깊다. 자신이 배웠던 진실과 막상 대면하고 있는 현실사이의 괴리가 주고 있는 현격한 차이는 그에게 방향감각을 좀처럼 되찾기 어렵게 만든다. 일찌감치 배웠던 진실을 포기하고, 자신이 대면하고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될텐데 그 쉬운(?) 처세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청소년에게는 짙은 방황이나 거친 행동이 자신의 혼돈을 발산시키는 색다른 처세법이 되고 만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어릴 때 품었던 이상이 현실에 의해 가볍게 포기되거나 버려져야 한다는 통설을 깨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상을 이상으로 품고 현실에서 그것을 실천해 나가려는 청소년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래서 현실이 이상이 되고, 이상이 현실이 되는 소중한 경험을 함께 하는 청소년들이 함께 있을 필요가 있다.
품의 20년이 그런 열망을 갖고 있는 이들, 특히 그런 청소년들에게 위안이 아니었을까?
 
 
신념(信念)이 필요한 시대다.
자신의 생각을 확신하기 어려운 시대다. 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인정하는 생각에 머물기는 쉽지만 자기만의 생각을 지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소수가 인정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다수의 생각은 옳고 소수의 목소리는 다수가 쏟아내는 전방위적이고 일방적인 폭력어린 소리 앞에서 힘을 얻기 쉽지 않다. 그래서 다양성이 사라지고 단종(單種) 세포마냥 오로지 한 가지 색깔만으로 그려진 무의미한 캔버스 위의 그림이 되고 있는 세상이다. 튀는 것이 인정되지 않는다. 똑같은 머리와 복장, 똑같은 유행에 자기 몸을 숨기는 것이 차라리 편하다는 결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세상을 편하게 사는 시대이다. 자기만의 생각과 믿음, 색깔에 신념을 갖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만다.
그리하여 청소년들은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기조차 벅차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이미 기성세대가 정해놓은 정답은 항상있는 것이고 그것을 맞추느냐 아니면 못 맞추느냐의 시험문제를 푸는 수험생의 입장에 서게 된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인정하고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신념으로 주장하는 청소년은 우등생이 되기 어렵고 좋은 대학을 가기 어렵고 좋은 직장을 얻기 어려우니 열등생의 낙인에 찍혀 사는 것을 감수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진정 필요한 것은 신념 있는 인간들이다. 사회의 발전은 모두가 라고 대답할 때 아니오.”라고 답한 한사람에 의해 가능하다.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할 때, 숨죽여 자신만의 다른 답을 찾고 그것을 확신하고 또 확신하여 마침내 다중의 오류나 망각을 뛰어넘어 새로운 진실을 가르치는 신념 있는 이들이 지금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특히 넘쳐나는 정보와 사실 아닌 사실의 홍수에 살고 있는 우리 시대에 자신의 올곧은 생각을 신념으로 지킬 수 있는 청소년들을 지켜주는 것은 우리 기성세대의 임무이다.
품의 20년의 역사가 신념 있는 청소년들을 키워내는 소중한 역사가 아니었을까?
 
 
열정(熱情)이 필요한 시대다.
열정을 갖고 살기 쉽지 않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를 유혹하는 수많은 끌림에서 이리저리 분주하기는 쉬워도 자신의 이상에 대해, 자신의 신념에 대해 열정과 혼을 갖고 산다는 것은 너무나 인위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에 노력을 행한다 해도 어렵고 어려운 길이다. 열정보다는 달콤한 유혹에 대한 탐닉만이 가까이에 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값싼 즐거움이 우리가 혼을 다 바쳐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이상과 신념을 향한 열정을 좀먹고 빈껍데기뿐인 일시적인 쾌락으로 자족하는 자신들을 만들어 나가게 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 시대의 청소년들은 열정어린 삶을 꿈꾸기 어렵다. 일상에서의 소소한 집착은 경험하지만 열정이 이루어내는 창조적인 결과를 경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기성세대가 만들어놓고 오로지 그저 충실히 받아들일 것만을 요구하는 현실은 스스로를 자신의 삶에 능동적인 주체로서 살기보다는 수동적인 객체로서 사는 것이 편하다는 지혜(?)를 일찍 터득하게 한다. 스스로 자신의 삶에 주체가 되지 않을 때 열정의 싹은 키워질 수 없다.
그러나 열정 없는 삶은 결국 쉽게 지친다. 지쳐도 다시 일어나기 어렵다. 일어나도 또 다시 달려가기 어렵다. 또 다시 달려간다 해도 자신이 설정해 놓은 방향으로 달리기는 어렵다. 우리 시대의 청소년들이 이런 열정 없는 삶을 사는 것은 비극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비극이고 우리 미래의 비극이다. 청소년들의 하루가, 한 달이, 일 년이 열정, 패션(passion)으로 가득 차 스스로의 삶에 역동성과 창의성이 넘쳐나는 것, 그것이 청소년을 청소년답게 만드는 요체요 우리의 미래를 보장하는 열쇠이다.
품의 20년이 이런 열쇠를 만들어가는 역사가 아니었을까?
 
 
품은 청소년복지의 대안이었다.
감히 이 시점, 우리사회에서 청소년복지라고 불리 우는 제도권 내의 수많은 시도들은 청소년들에게 이상을 심어주지도 못하고 있고 신념을 키워주지도 못하며, 열정어린 삶을 지지해 주지도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한다. 청소년기본법, 청소년활동진흥법, 청소년복지법 등등의 각종 조문에서 보장하는 청소년들의 권리와 복지를 위해 존재하는 그 많은 제도적인 시도들이 어느덧 청소년들에게 이상을 버리고 현실을 택하며, 자신만의 색깔과 신념을 키우는 대신에 다중의 보호색 뒤에 자신을 은닉하는 법을 소개하고, 열정에서 오는 역동적인 삶 대신 시행착오 없이 건조하고 무난한 일상의 반복에 익숙하도록 한 것은 아닌가 한다.
제도권 어디에도 근거를 찾을 수 없는 품이 도봉산 밑의 한 자락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유지해 온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품을 여기까지 지켜오고 왔고, 그간 지나쳐간 수많은 청소년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온 지지자들은 제도권 복지의 일상적인 틀이 가져다줄 수 있는 무()이상, ()신념, ()열정의 세계를 깨는 하나의 실험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품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새로운 대안의 세계를 보여줘 왔던 것이다.
 
 
품의 역사는 계속되어야 한다.
앞으로 품의 역사는 그 끝을 알 수 없다. 아마도 우리 사회의 모든 청소년들이 자신이 소중히 찾아낸 자신만의 이상을 굳건한 신념과 열정으로 추구해 나가는 그런 세상이 오면, 그리고 국가의 책임으로 운영되는 수많은 기관들이 그러한 청소년들의 앞길에 밝은 등불을 비추는 역할에 충실 하는 때가 오면 굳이 품의 역할이 더 이상 필요치 않으리라.
그러나 그러한 세상이, 그러한 때가 오지 않는 한 품의 실험과 대안은 계속되어야 하고 함께 해 나가야 하리라.
 
 
 
이태수교수님.jpg
 
이태수(꽃동네대학교 교수)  
꽃동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중으로 '왜! 복지국가인가?'를 물으며 진정한 복지국가를 위해 싸우고 있는 전사이다. 사회복지 실천의 다양성과 진보적 운동성을 강조하지만, 따뜻한 제자사랑으로 유명하다. 가끔 아끼는 제자를 품으로 출가시키기도 한다. 품이 기댈 수있는 소중한 스승이다.

 

 
Copyright ⓒ www. All rights reserved.